[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과학입국’의 길로 안내한 우장춘 박사

입력 : ㅣ 수정 : 2018-04-18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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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학 거장’ 탄생 120주년
씨 없는 수박 첫 개발자 아냐
작물 품종 개량·보급해 증산
과학 본질·존재감 깨우쳐 줘


지난 4월 8일은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1898~1959) 박사가 태어난 지 12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 박사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현재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초대 소장입니다. 흔히 우 박사 하면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육종학자로서 우 박사의 대표적인 업적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론을 보완한 ‘종의 합성’ 이론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한 배추속(屬) 작물의 유전 연구와 품종 개량입니다.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피튜니아 교배를 가르치고 있는 우장춘 박사.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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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피튜니아 교배를 가르치고 있는 우장춘 박사. 서울신문 DB

최근 들어서는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 우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장춘=씨 없는 수박을 만든 과학자’로 알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은 일본 농학자 기하라 히토시(1893~1986) 박사입니다. 우 박사는 일본에서 기하라 박사와 친하게 지내 그의 연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50년 한국으로 온 뒤 농민들과 언론에 대해 육종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수시로 ‘씨 없는 수박’ 이야기를 꺼냈고 1953년에는 씨 없는 수박을 직접 재배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최초’만 아닐 뿐 우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것이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하라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우 박사의 ‘종의 합성 이론’ 덕분이기도 합니다.

우 박사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6년 도쿄제국대 농학실과에 입학했습니다. 1919년 졸업 후 도쿄 농사시험장에서 연구직이면서 기술직에 해당하는 기수(技手)로 20여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농학박사 학위도 38살이 되던 해인 1936년에 받았지요. 늦깎이 박사였지만 학위 취득을 위해 제출한 ‘배추 속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논문은 세계 육종학계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농사시험장에서 기수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원예작물 품종 개량 실험을 하면서 쌓은 경험이 논문에 그대로 실렸던 것입니다. ‘종의 합성 이론’은 ‘우장춘 트라이앵글’로도 알려져 있는데 쉽게 말하면 염색체 수 10개인 배추와 9개인 양배추를 교배시키면 염색체 수가 19개이면서 전혀 다른 종인 유채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종은 다르더라도 같은 속의 식물을 교배하면 전혀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인 우 박사의 이론은 아직까지도 종 합성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되고 있고 육종학 연구에서 여전히 인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물리학 분야에서 이휘소 박사가 있다면 생물학 분야에서는 우 박사가 있다고나 할까요.

또 요즘 제주도 하면 감귤을 떠올리고 강원도 하면 감자를 연상케 하는 지역별 특화 농업을 제안했던 것이 우 박사라는 사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도입한 귤을 품종개량하고 제주도에서 시험재배해 감귤 농업을 제안했고 무병 씨감자를 강원도 대관령에서 시험재배에 성공함으로써 감자 특산지로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 됐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 토양에 맞는 배추 ‘원예 1호’, 양배추 ‘동춘’, 양파 등도 개량했고 세상을 뜨기 전에는 병충해에 강하고 낱알이 많은 벼의 개량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습니다. 우 박사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보릿고개’라는 말은 진즉에 없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 박사가 태어난 4월은 정부가 정한 ‘과학의 달’ 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점점 커져 가는데 국내에서 ‘과학’에 대한 존재감은 점점 미미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가 창조경제니 융합이니 4차 산업혁명만을 들먹이며 과학에 교육, 미래,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무리하게 접붙이기하는 ‘종의 합성’ 실험을 하며 ‘잘되고 있어’라는 자기최면을 걸다 보니 과학의 본질이 뭔지를 까먹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edmondy@seoul.co.kr
2018-04-1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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