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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화통역 업무 때문에 당한 성추행 피해, 첫 산재 판정

[단독]수화통역 업무 때문에 당한 성추행 피해, 첫 산재 판정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8-04-05 18:29
업데이트 2018-04-0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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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연관성 인정

근로복지공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연관성 인정

“황소라씨,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말씀하세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열린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에 출석한 성폭력 피해자 황소라(30·여)씨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대신 황씨 옆에 있던 박사영 노무사가 “우울증, 급성 및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도 피해자의 업무와 상당히 연관이 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헤아려 달라”고 말했다. 판정은 5분도 안 돼 끝났다. 그리고 6일 후인 지난 4일 황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승인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단이 사이버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 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황씨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산재 승인을 받으면 묵은 체증이 내려갈 것 같았는데 답답한 마음도 든다”면서 “공식적인 피해자로 인정받은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자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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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수화 통역을 전공하고 자격증을 딴 황씨는 2011년 ‘107 손말이음센터’에 입사했다. 황씨의 역할은 청각·언어장애인과 수화로 대화를 나눈 뒤 비장애인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이다. 음식 주문부터 각종 민원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중계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사명감 하나로 일했다. 그러다 ‘그 사건’이 터졌다. 2014년 12월 24일 오전 7시쯤 황씨는 평소처럼 걸려온 영상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장애인이 아니었다. 이 남성(30·일용직)은 황씨가 보는 앞에서 은밀한 부위를 드러내고 음란 행위를 했다. 당시 26세였던 황씨는 규정상 전화를 끊지도 못했다. 이날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15일 황씨는 같은 전화를 10차례에 걸쳐 받았다. 같은 달 17일과 19일에도 전화를 받았다. 사이버 성폭력을 당한 것만 모두 14차례다. 황씨는 당시 서모 센터장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온 답변은 “또 다시 전화가 걸러오면 영상을 캡처해두라”는 것이었다. 황씨는 센터장의 말에 한 번 더 상처를 입었다. 이 센터장은 다른 직원 성희롱으로 지난 2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그는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렸다. 황씨의 부모는 “사표 쓰고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했지만 그는 ‘동료들이 똑같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버티기로 했다. 지난해 황씨는 노동조합을 결성해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 지회장를 맡고 있다. 이 센터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산하 기관이지만 진흥원이 민간 업체인 ‘KT CS’에 위탁을 맡겨 운영된다. 황씨는 “지난해 9월 정신과 치료를 처음 받았을 때 의사가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중계사로서 자부심과 자긍심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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