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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대세보다 대의를 좇는 정치를 하라/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대세보다 대의를 좇는 정치를 하라/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박찬구 기자
입력 2018-03-30 22:54
업데이트 2018-03-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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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박찬구 편집국 부국장
‘산화낙진산장재(山花落盡山長在ㆍ산에 핀 꽃이 다 떨어져도 산은 늘 그대로 있고) 산수공류산자한(山水空流山自閑ㆍ계곡물 부질없이 흘러도 산은 여유롭기만 하다)’

중국 송대의 왕안석(王安石)이 자신의 개혁정책을 지지한 황제 신종을 그리며 지은 시구절이다. 어떤 간난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소신껏 시대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각오와 간절함이 묻어난다. 900여년이나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위정자(爲政者)의 마음가짐과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사회 공동체와 민생을 향한 정치와 정책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위정자 본연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말함이다.

새삼 왕안석을 떠올리게 되는 건 최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볼썽사나운 모습 때문이다.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 행사를 두고 한국당은 “개헌장사”, “3일에 걸쳐 쪼개기식으로 광을 파는 개헌쇼”, “짜고 치는 사기도박단 같은 행위”, “현 여권의 집권 연장용 개헌”이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야당을 반개헌 세력으로 몰아 6월 지방선거에서 이익을 보려는 정략”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이 같은 한국당의 개헌 주도권 프레임은 정치권력 중심의 개헌 논쟁을 가열시킴으로써 경제와 영토, 환경, 인권, 평화 등 시대 과제를 담은 개헌의 당위성이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와 사람 중심의 개헌 의제를 상대적으로 퇴색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권 개헌 논의의 주된 메뉴로 등장하면서 기업과 노동의 두 바퀴 수레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헌법 차원의 논의는 상대적으로 묻힐 수밖에 없다.

개헌 문제뿐만 아니다. 한국당 지도부는 자기 당 소속인 울산시장의 측근 비리를 수사한다는 이유로 법 집행기관인 경찰을 두고 “광견병 걸린 정권의 사냥개”니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니 막말을 쏟아냈다. 제1야당이기 이전에 선출직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양식과 품격을 저버린 실망스런 행태라 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해 스스로 봉합을 시도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개헌안을 통과시킨 국무위원들을 “권력의 개, 권력의 환관”이라며 몰아세웠다. 이 같은 제1야당의 모습은 정치 상황과 유불리에 따라 조변석개하고 갈지자를 걷는가 하면 눈앞의 선거에만 매몰되는 과거의 구태 정치집단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는 ‘대세(大勢)보다 대의(大義)’라고 했다. 한때 세력이 약해져도 대의를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대세를 잡을 수 있지만 대의를 잃고서는 비록 대세를 형성하더라도 종국에는 패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단순히 승패의 논리에 그치는 게 아니다. 정치의 대의란 곧 민심이며 민생이라 할 수 있다. 위정자가 한때의 술수와 입발림으로 민심을 얻는다 하더라도 진정성이 없다면 민심을 계속 품을 수도, 민생을 살릴 수도 없다는 건 고금의 이치다. 가까이는 지난 10년간 우리가 목도한 두 정권의 부침이 그러했다. 화려한 꽃이 시들고 갖은 시련이 찾아와도 꿋꿋이 대의를 지키며 공동체를 위한 소임을 다하는 게 위정자의 제대로 된 처신이라 할 수 있다.

대의는 원칙과 명분에서 나온다.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총선에서 험지로 뛰어든 정치인은 당장은 패배하더라도 훗날 더 큰 정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명분도 원칙도 없이 알량한 기득권과 세력에 기대 위세를 부리는 일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반칙과 특권을 물리치고 원칙과 상식을 살려 나가는 게 당장은 불편할 수 있어도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골고루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며 위정자의 당연한 의무라 할 수 있다.

‘만년야당’은 없다. 하지만 당리당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공동체와 사람의 가치를 외면하는 정치집단에 내일이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ckpark@seoul.co.kr
2018-03-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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