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년의 밤’에서 악인 변신

자기복제 연기 벗고 새로운 도전
매일 면도해 M자형 탈모 만들고
격투 장면 찍다가 귀 40바늘 꿰매
“제일 열심히 한 영화로 남을 것”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배우로 배우 장동건은 관객들에게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예전엔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대치보다 더 해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젠 제 역량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성숙하게 해내고 싶어요.”<br>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간 제 스스로에 대한 식상함이 있었어요. 결과물들이 좋은 평가를 못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어느 순간 연기에 재미를 못 느끼고 뭘 해도 새롭지 않을 것 같았죠.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엄습했어요. 그때 ‘7년의 밤’의 오영제 역을 제안받았는데 ‘새로운 것들이 내 안에서 나올 수 있겠다’ 싶었죠.”

영화계 안팎에서 수년간 기대작으로 꼽혀 온 ‘7년의 밤’이 오는 28일 극장가에 내걸린다. 문단에서 보기 드문 치밀한 스릴러로 50만부가 팔린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데다, ‘광해’(2012)로 1200만 관객을 모은 추창민 감독의 6년 만의 복귀작이라 더욱 관심을 모았다.
영화 ‘7년의 밤’에서 악역 변신 장동건
일찌감치 소설의 팬이었던 배우 장동건(46)에게도 ‘7년의 밤’은 연기 인생에 새로운 동력이 된 기대작이었다. 우연한 사고로 살인자가 된 최현수,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에 나서는 사이코패스 오영제. 두 사람의 통렬한 대립을 밀도 높게 쌓아 올린 소설을 읽고 그는 ‘악인인 피해자’가 ‘선인인 가해자’에게 복수한다는 플롯에 매료됐다.

“소설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였어요. 오영제를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도 났는데 운명처럼 제안이 왔죠. 추 감독님과 처음 만나고 나서 들뜬 마음이 걱정으로 바뀌었어요. 제가 그린 오영제와 감독님이 설정한 오영제가 너무 달랐거든요.”

그는 오영제를 예민하고 섬세한 사이코패스이자 섹시한 매력이 있는 악당으로 해석했다. 문장에서 위트 있는 묘사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님은 지역 유지 이미지를 만들자며 ‘몸무게는 10㎏ 정도 불리자’, ‘M자형 탈모를 만들자’고 제안하시더라구요. ‘그러려면 M자형 탈모가 있는 연기 잘하는 배우를 쓰지 왜 나를 쓰나’ 싶었죠(웃음).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충격과 완충의 과정이 있었던 셈이에요. 하하.”

영화에서 그는 ‘잘생김’을 무너뜨리는 ‘M자형 탈모’에 서늘하고 견고한 악인의 무표정을 체화해 ‘장동건만의 오영제’를 빚어냈다. 캐릭터를 빚어내기까지 중압감은 컸다. 올해로 연기 생활 26년째지만 어린 딸을 허리띠로 매질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죄책감이 들었다. 딸의 살인범을 징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아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앗아가려는 오영제의 심리를 이해하는 과정도 힘겨웠다. 물리적인 후유증도 컸다. 9~10개월 동안 매일 면도를 해서 만든 M자형 탈모를 회복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류승룡(최현수 역)과의 격투 장면에서는 귀를 다쳐 40바늘을 꿰매기도 했다.

“여한이 없어요. 자신이 있다, 없다 혹은 만족한다, 안 한다를 떠나 제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는 다 했거든요. 제 필모그래피에서 ‘인생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일 열심히 한 영화로 남을 것 같아요.”

지난해 선보인 ‘브이아이피’, 곧 개봉을 앞둔 ‘7년의 밤’에 이어 최근 촬영을 마친 ‘창궐’까지, 그는 줄곧 ‘센 캐릭터’를 도맡고 있다.

“영화에선 악역 제안이 주로 들어와요. 말랑말랑한 캐릭터는 예전에도 섭외가 별로 없었어요. 제 스스로도 영화에선 선 굵은 역할, 극적인 감정선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더라구요. 저를 선한 이미지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 반대의 성정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올해는 여느 때와 다르게 다작 행보가 눈에 띈다. 요즘은 다음달 25일 KBS 2TV에서 첫선을 보일 드라마 ‘슈츠’ 촬영에 한창이다. 인기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전설적인 변호사로 변신해 가짜 신입 변호사(박형식)와 호흡을 맞춘다. 지난달 중순에는 ‘공조’(2016)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신작 ‘창궐’ 촬영을 마무리했다.

“어느 순간 연기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적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품 선택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고요. 예전엔 공들이고 신중을 기해 작품을 골랐는데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상업적인 흥행을 따져봤던 것들이 잘 안 되니까(웃음). 이젠 단점이 있어도 장점이 더 크면 하려는 마음이라 작품을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됐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인기기사
인기 클릭
Weekly Best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