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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른 비정상적인 두 남자… 트럼프 코미디·푸틴 스릴러

정상에 오른 비정상적인 두 남자… 트럼프 코미디·푸틴 스릴러

입력 2018-03-16 22:38
업데이트 2018-03-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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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러시아 대통령 안내서’ 2권 출간

화염과 분노/마이클 울프 지음/장경덕 옮김/은행나무/492쪽/1만 7000원
푸틴 권력의 논리/후베르트 자이펠 지음/김세나 옮김/지식갤러리/384쪽/1만 5800원


#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트위터’로 해고했다.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온 틸러슨 장관이 기자들에게 “북·미 정상회담 준비 작업에 차질이 없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던 바로 다음날이다. 해임된 틸러슨 장관은 고별 기자회견에서 “그날 오후에야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경질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국무장관은 대통령 계승순위 4순위로, 우리나라로 치면 부총리급이다. 대통령이 당사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트위터로 부총리를 해고해버린 셈이다. CNN은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진행했던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에서 남긴 유행어 “넌 해고야” 방식으로 경질됐다고 보도했다.

#2. 지난 14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전직 러시아 이중 스파이 부녀의 신경가스 독살 시도에 대응해 영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한다고 밝혔다. 1985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런던지부장 올레크 고르디엡스키 영국 망명 사건 이후 두 나라가 각각 31명씩 외교관을 추방한 이래 최대 규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18일 대선에서 4선 당선이 확실시되는 그는 마지막 대통령 선거 유세를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열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병합한 일로 서구의 제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에게 그런 압박은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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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둘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들이다. 트럼프는 ‘트위터 해고’를 비롯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전격 수용한 일, 포르노 여배우와의 섹스 스캔들 등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푸틴은 러시아 스파이 독살의 배후 혐의를 받고 있다. 18일 치러질 선거에서는 4번째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DB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둘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들이다. 트럼프는 ‘트위터 해고’를 비롯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전격 수용한 일, 포르노 여배우와의 섹스 스캔들 등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푸틴은 러시아 스파이 독살의 배후 혐의를 받고 있다. 18일 치러질 선거에서는 4번째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DB
트럼프와 푸틴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세계를 움직이는 ‘정상’(頂上)이라는 점. 그리고 이 두 정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상에서 벗어난 ‘비정상’(非正常)이란 점이다. 이 ‘비정상적인 정상’들은 언론에 수시로 등장한다. 속된 말로 ‘꼴통’처럼 보이는 이들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왜 이들은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비정상적인 정상들을 이해하는 데에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이 최근 출간됐다.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 후베르트 자이펠의 ‘푸틴 권력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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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분노’는 저자가 트럼프 선거캠프 시절부터 당선 이후까지 총 18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 전·현직 관계자 200여명을 취재해 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6년 11월 8일 미국 제45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당선을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가 세운 목표는 오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부정직한 힐러리 클린턴의 희생자’ 정도였다. 아내 멜라니아 역시 비슷한 생각이어서, 트럼프의 당선 소식이 알려지자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에 띄지 않고 식사할 권리’를 빼앗겼다며 슬퍼했다.

책이 출간 이후 화제를 부르면서 주요 내용은 언론을 통해 이미 많이 공개됐다. 가장 뜨거웠던 일화는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관계자들의 만남은 반역적이자 비애국적”이라고 한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의 발언이다.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부터 함께했던 배넌은 사실상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인물이다. 한때 트럼프의 심복이었던 인사가 내뱉은 증언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트럼프가 배넌을 향해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비난을 퍼붓고, 결국 배넌이 “트럼프 주니어는 애국자이며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화염과 분노’가 만든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책은 트럼프에 관한 악의적인 비판으로 가득하지만,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는 그저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특히 저자가 예측한 백악관 내부자들의 권력 암투가 하나둘씩 맞아들어가고 있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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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권력의 논리’는 깡패나 독재자 정도로 이미지화한 푸틴을 다른 시각에서 본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편집자 출신의 후베르트 자이펠은 2010년 1월 인터뷰를 시작으로 푸틴과 인연을 맺고 나서 5년 동안 그와 주변 인물을 취재했다. 저자는 5년 동안 취재 결과, 푸틴에 대한 서방의 시각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서방에서 푸틴을 ‘악’으로 규명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인들이 푸틴에게 왜 열광하는지를 일련의 사건들로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소련 붕괴 이후 많은 러시아인이 아직도 자존감을 상실한 채 살고 있으며, 대부분 러시아식 민주주의를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그리고 푸틴의 정책들은 이를 잘 반영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예컨대 2014년 2월 크림반도 병합이 좋은 사례다. 유혈 사태에도 불구, 200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93%가 크림반도 병합을 찬성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크림반도 병합이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유선상으로 분노했다. “러시아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통보도 푸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 푸틴은 연설에서 “우리는 늘 기만당했고, 결정은 늘 우리의 등 뒤에서 내려졌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에 기초해 행동한 것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큰 지지를 받았다.

다만 저자의 푸틴 옹호와 관련해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서방 언론에서는 그가 ‘ 친푸틴’ 성향임을 지적하는 비판도 상당하다. 크림반도 병합과 관련, 2014년 초여름 푸틴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점은 그대로 드러난다. 푸틴은 이 인터뷰에서 “유럽이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야당을 소집해 러시아의 병합을 반대한다고 말했으면 분쟁도, 유혈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며 “메르켈과 올랑드, 오바마가 내게 언급한 이유는 늘 똑같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됐고,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했다”고 밝힌다. 자신들의 이익을 노리고 뒤에서 말만 하는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뜻이었다.

TV프로그램으로 치자면 트럼프는 코미디, 푸틴은 스릴러 정도쯤 되겠다. 이를 보는 일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다. 책을 통해 이들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는 있지만, 머리는 더 지끈거린다. 그러니까, ‘아는 게 병’인 셈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03-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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