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평창에 날아든 사람 얼굴을 한 새

입력 : ㅣ 수정 : 2018-02-14 18:12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지난 9일 저녁 평창에서는 상원사 동종에서 시작해 달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을 소재로 창작된 미디어아트가 현란하게 펼쳐졌다. 전통과 현대를 통합한 연출력이 돋보인 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시작 부분에 무대 중앙에 등장해 춤을 춘 사람 얼굴을 한 새, 곧 인면조였다. 2시간 15분 정도 진행된 개막식에서 2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출연했는데도 큰 화제가 된 것은 이것이 뜻밖의 출연자였기 때문이다. 그 앞에 나온 청룡이나 백호, 주작이나 현무 같은 사신(四神)만 해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만 인면조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인면조가 한반도에 처음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1609년 전 평양의 남서쪽에 있는 덕흥리 고분에서다. 이 무덤은 양력으로 409년 1월에 만들어져 1976년 발견되기까지 실로 오랜 시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무덤으로 들어가면 진입 통로인 연도와 전실, 전실과 후실을 연결하는 짧은 통로 그리고 후실, 관을 안치한 널방이 차례로 나온다. 북한과 중국 지안(集安) 등지에 1만 3000여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고분들 가운데 이 고분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연도와 통로의 천장을 제외한 내부 공간 전체가 벽화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덕흥리 고분의 전실에는 둥그런 궁륭식 천장을 씌웠는데 그곳에 날개 달린 물고기, 꼬리가 여러 개인 새, 몸은 하나인데 얼굴이 둘인 괴물 등 다양한 모습의 기괴한 동물 18마리를 그려 놓았다. 바로 그 천장의 서쪽 부분에 천추(千秋)와 만세(萬歲)라는 이름이 적힌 인면조 두 마리가 있다. 두 인면조는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발 모양만 다르다. 천추는 짐승의 발, 만세는 새의 발을 가졌다. 천년만년 산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늑한 무덤에서 장구한 세월을 보내던 그 인면조를 21세기의 예술가들이 흔들어 깨워 평창으로 날아들게 한 것이다.

덕흥리 고분을 비롯해 북한의 네 지역에 모여 있는 63기의 고분이 2004년 ‘고구려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 가운데 16기의 고분에 벽화가 남아 있다. 북한에는 ‘고구려 고분군’과 2013년에 등재된 ‘개성의 역사 기념물과 유적’, 이렇게 두 건의 세계유산이 있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이코모스(ICOMOS)는 고구려 고분군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유산이 매우 중요한 것은 고구려 왕국의 문화가 가진 중요성에서 비롯되는데, 그 중요성은 고분 천장의 구조적 해법과 벽화에 묘사된 일상생활의 증거에만 남아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얻은 소재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공연예술을 보여 준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옛것을 토대로 새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예술창작 방법론인데, 오늘날 그것에는 두 가지의 이점이 있다. 하나는 작품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만일 이번에 인면조를 현대 예술가가 전적으로 창작했더라면 그것의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많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생뚱맞다는 비판에 시달렸으리라. 그런데 1609년 전부터 이 땅에 실재한 디자인을 근거로 하니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것의 정체성을 문제 삼기보다 그 역사, 그리고 상징과 의미를 알고 싶어 했다. 문화상품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또 하나는 극히 현실적인 이점으로, 문화유산이라는 옛 소재를 사용하면 저작권료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저작권료는 저작권자의 사후 70년까지만 보호된다. 만일 평창올림픽에 사용된 수많은 문화유산의 디자인과 아이디어에 대해 모두 저작권료를 내야 했다면 제작비가 껑충 뛰었을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의 감동은 송승환 총감독의 인터뷰를 보는 순간 아찔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개·폐회식 예산이 700억원 정도로, 10년 전 베이징올림픽 개·폐회식 예산 6000억원의 12%에 불과하다니…. 이렇게 문화예술에 돈을 아껴서는 덕흥리 고분 같은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그러면 우리는 조상의 유산을 활용하기만 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만들어 내지 못한 부끄러운 조상이 되고 말 것이다.
2018-02-15 26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

    건강나누리캠프
    서울미래컨퍼런스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