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경 기자의 사람, 사랑] 평생 음악이 흐르는 삶

입력 : 2018-02-13 17:22 ㅣ 수정 : 2018-02-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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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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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수경 사회2부 기자

“뮤지션에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내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영화 ‘인턴’ 속 70세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의 시니어 인턴에 도전하며 이런 지원 동기를 밝힌다. 40년간 전화번호부만을 만들던 그가 처음 온라인 쇼핑몰에 갔을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어 보였지만, 그는 나이의 경계를 허물고 특유의 근면함과 친절함으로 본인의 일을 찾는다. 현실 속에서 벤처럼 ‘꼰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한 노인이 얼마나 될까. 연륜과 지혜는 나이를 먹는다고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실제 일하는 노인들을 만나기 전까지 영화 속 벤은 판타지라고 치부했다.

 몇 해 전 노인 빈곤 문제를 취재하며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길에서 만난 실버택배기사 김순우(80·가명) 할아버지와 전단을 나눠주는 서용순(68·가명) 할머니가 그랬다. 김 할아버지는 10년 넘게 실버 택배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주소만 들으면 길이 훤하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꼭 길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피처폰을 쓰는 동료들도 많지만 김 할아버지는 길 헤매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혔다. 동행 취재를 하며 그의 짐을 나눠 들려 했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10년 넘게 일하며 배송 물건을 손상하거나 분실한 적이 없는 완벽주의에서 온 행동이었다.

신촌의 한 대학 앞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서 할머니는 나태를 몰랐다. “시간당 남의 돈을 받는데 그럴 수 있느냐”며 쉴 새 없이 전단을 돌렸다. 전단을 줄 때 할머니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친절하게 인사를 하면서 일일이 행인과 눈 맞춤을 하며 전단을 건네니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적었다. 일이 끝난 뒤에도 그냥 자리를 뜨는 동료들과 달리 서 할머니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전단을 다시 주워 주변을 깨끗이 한 뒤에야 퇴근했다. 그중 깨끗한 전단은 업체에서 다시 쓸 수 있도록 따로 모아 두기까지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노인들은 결코 생산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관련 업체를 운영한다면 당장에라도 모셔 오고 싶은 탐나는 인재였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노인은 당연히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에 휩싸여 그들을 평가절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편견이 월 보수 20만원짜리 질 낮은 공공형 일자리만 늘어나게 한 것은 아닐까.

최근 정부는 단순히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노인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노인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에 앞서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잘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 자살률 1위 등 부끄러운 지표에 “다른 나라에 비해 압축적으로 노령화 사회가 진행돼서”, “공적연금을 도입한 기간이 짧아서”라는 해명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노인생산성에 대한 철저한 재평가가 필요한 때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벤을 위해 더 많은 노인이 자신 안의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말이다.
2018-02-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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