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슬기로운 일상생활을 위하여/송한샘 국제예술대 교수

입력 : ㅣ 수정 : 2018-02-0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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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샘 국제예술대 교수

▲ 송한샘 국제예술대 교수

지난달 종료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여전히 화제다. SNS상에는 허한 마음 달랠 길 없어 그리움을 호소하는 포스팅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늦게나마 다시보기로 ‘정주행’에 나선 이들도 많다. 어쩌면 ‘슬기로운…’은 지상파를 비롯한 여타 방송의 미니시리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다소 낯설었을지 모른다. 작품은 사극·역사, 결혼·신분상승, 치정·멜로, 청춘·연애, 범죄·조폭, 의학·법정, 전쟁·첩보, 학원·성장, 스포츠·엔터테인먼트, SF·판타지 등 기존 드라마의 클리셰를 벗어나 발칙하면서도 기발한 한 수를 택했다. 그것은 바로 ‘감빵’, 즉 교도소 안의 일상이었다. 출연진의 면면을 살피면 의아함은 한층 더해진다. 주역들의 감방이었던 ‘2상 6방’에 둥지를 튼 배우들은 사실 그간 TV 드라마나 영화 등의 매체에서 스타급 활약을 펼치던 이들이 아니었다. 물론 정웅인, 정경호, 성동일 등 베테랑 연기자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2상 6방’과 교도소 곳곳을 훈훈하게 채웠던 이들 다수가 연극과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파이거나 대중매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재야의 고수 같은 존재였다. ‘슬기로운…’은 낯선 공간에 낯선 배우를 데려다 놓고 화제성과 시청률을 둘 다 거머쥔, 그야말로 ‘슬기로운’ 문화 콘텐츠였던 것이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내면에 그토록 깊고 큰 울림을 불러일으켰던 비결은 무얼까?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작품 외적 요인으로는 ‘소확행’(小確幸,) 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자는 최근의 트렌드를 꼽고 싶다. 라면 수프·사이다·매실차·참기름을 섞은 특제 비빔면부터 미지근한 물 아닌 ‘뜨거운’ 물로 부은 컵라면, 페트 아닌 ‘유리’병에 든 음료수, 단 ‘십분’의 접견, 여자 교도소 수감자와의 펜팔, 보고 싶은 추억의 영화 ‘영웅본색’, 헤어지긴 싫어도 석방 앞엔 “다시 오면 뒤진다!” 말하는 정든 동료들까지…. ‘2상 6방’의 군상들은 너무나 작지만 확실하게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온몸으로 즐거워한다. 그런 죄수들의 코미디 같은 모습에 어처구니없어 웃던 시청자도 어느새 그들의 “불행에 연민을 느끼고, 내 일상의 작은 행복을 돌아보며, 순간의 실수로 나 역시 저들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의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간 안방극장에서 감옥은 감시와 처벌의 공간, 부정과 비리의 아이콘이었다. 집에서 생각 없이 편하게 보는 TV 드라마의 특성상 고정관념을 뒤집고 감옥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슬기로운…’의 밑바닥 인생들이 찾는 작고 확실한 행복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고 보면 ‘소확행’ 이전부터 ‘슬로 라이프’, ‘욜로’, ‘1코노미’ 같은 용어가 회자돼 왔다. 그 공통점은 남들이 보는 고정관념과 실적주의에 함몰되지 말고 개인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자는 것에 있다. 그런데 그 한 켜 아래를 들추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우리의 민낯이 드러난다.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데 입주민의 차를 주차하지 않았다고 아파트 경비원의 밥줄이 끊기고, 생리대 하나 없어 신발 깔창을 써야만 하는 세상에서, “소년들이여 대망을 품으라!”(Boys be ambitious!)와 같은 격언은 이미 설자리를 잃었다. TV 드라마는 동시대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문화 콘텐츠 중 하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처럼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슬기로운 일상생활, 즉 작든 크든 확실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2018-02-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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