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다큐&뷰] 조각 3代, 인생을 새기다

입력 : 2018-01-14 17:38 ㅣ 수정 : 2018-01-15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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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조각 가문 손창식·손유진씨 부녀
인류 문화유산의 대부분은 ‘돌’이다. 돌은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로 인류가 자연에서 체득한 물질 중 연원이 가장 오래됐다. 단단하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이런 돌처럼 오랫동안 가업이 이어지길 희망하는 전남 목포의 석재조각 가문 손창식(61)·손유진(31) 부녀를 찾았다.
손유진씨와 손창식씨가 ‘손창식 야외 석조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2014년 문을 연 9800㎡ 규모의 전시관에는 두 사람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 손유진씨와 손창식씨가 ‘손창식 야외 석조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2014년 문을 연 9800㎡ 규모의 전시관에는 두 사람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80년 전 손창식씨 아버지부터 시작된 석공의 인연

손씨 가문과 석공의 인연은 약 80여년 전 손창식씨의 아버지 고 손양동씨로부터 시작된다. 12살의 나이로 석공에 입문한 그는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인 목포대 본관 석조 건축물을 비롯한 목포 일대의 근대 석조 건물을 축조한 산증인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레 석공의 길을 걷게 된 손창식씨는 학문과 교육에도 매진해 2009년 대한민국 인물 석조 명인(09-235호) 칭호도 얻게 됐다. 작업장을 놀이터로 알고, 망치와 정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딸 손유진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관련 전공까지 마친 뒤 교육자의 길을 꿈꿨다. 하지만 3년 전 가업을 잇는 석공이 되겠다며 명인 전수자로 들어와 3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남자들도 버티기 힘든 거친 일터에서 여성 석공은 매우 드물지만, 실제 돌을 다뤄 봐야 기법과 조형성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는 그녀의 결정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달궈진 정을 망치로 내려치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스승인 손창식씨가 제자 유진씨의 망치를 같이 잡고 각도와 힘을 조절해 주고 있다.

▲ 달궈진 정을 망치로 내려치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스승인 손창식씨가 제자 유진씨의 망치를 같이 잡고 각도와 힘을 조절해 주고 있다.

손창식씨와 손유진씨가 망치와 정을 들고 있다. 이제 둘은 스승과 제자이자 동업자다.

▲ 손창식씨와 손유진씨가 망치와 정을 들고 있다. 이제 둘은 스승과 제자이자 동업자다.

스승의 손은 그 세월만큼 거칠고 단단하지만 제자의 손은 아직 누가 봐도 젊은 여성의 것이다.

▲ 스승의 손은 그 세월만큼 거칠고 단단하지만 제자의 손은 아직 누가 봐도 젊은 여성의 것이다.

●부녀지간이 곧 사제지간… ‘따로 똑같이 ’ 작업하는 동료

아버지와 딸, 스승과 제자의 관계지만 또한 둘은 ‘따로 똑같이’의 동료이기도 하다. 이들이 작업할 땐 ‘땅땅’ 하는 망치 소리와 ‘윙~’ 하는 전기톱 소리가 함께 들린다. 전통 방식으로 망치와 정을 이용해 돌을 쪼개는 아버지와 달리 유진씨는 전기톱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전기톱은 망치보다 ‘비교적’ 힘이 덜 들 뿐 힘들긴 마찬가지다. 뿌옇게 날리는 파편과 돌가루에 검은 선글라스는 하얗게 변한다. 글씨를 조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컴퓨터 서체로 프린팅한 스티커를 이용하는 유진씨와 달리 아버지는 직접 붓글씨를 적은 한지를 돌에 붙여 정으로 하나하나 두드려 각자한다. 정답은 없다. 때에 따라 석물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방식을 이용한다.

요즘은 대부분 기계로 깎아 쓰는 특수합금강 정을 쓰지만 손씨 가문 작업장 한편엔 불을 이용해 강철 정을 제련하는 ‘불무깐’(대장간을 뜻하는 방언)이 있다. 할아버지가 직접 제작해 지금까지 물려 온 것이다. 높은 온도의 불에 정을 달군 뒤 망치로 때려 제련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까다롭기 때문에 요즘은 보기 힘든 전통 방식이지만 돌의 강도에 따라 담금질을 달리하면 돌의 양감을 살려 조각할 때 더 유용하다.
●“귀중한 기술과 이야기 물려받은 건 특별한 거죠”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라 생각해요.”


유진씨에게 젊은 나이에 험한 가업을 잇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덧붙여 “또래 여자 친구들은 결혼해 아이의 엄마가 됐거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지만 자신의 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물려 온 귀중한 기술과 이야기들이 구식이라는 이름으로 이수자 없이 사장되는 현시대에 그녀와 같은 특별한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 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18-01-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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