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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화해ㆍ치유재단 “조용하고 신속한” 설립 지시

박근혜 전 대통령, 화해ㆍ치유재단 “조용하고 신속한” 설립 지시

김태이 기자
입력 2017-12-27 15:34
업데이트 2017-12-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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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지원중단도 종용…피해자 회유ㆍ종용 정황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화해·치유재단’ 설립과정에서 조용하고 신속하게 설립을 추진하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사업에 대한 여가부의 지원중단 결정 배경에도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으며 현금지급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회유ㆍ종용 정황, 재단 설립과 운영에서의 규정 위반사례도 드러났다.

여성가족부는 27일 ‘화해·치유재단’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에 대한 자체 점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피해자 지원을 위해 여가부 산하에 설립된 재단이다. 이 재단이 피해자 동의 없이 지급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자 여가부는 지난 7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설립과정과 운영 전반을 점검했다.

점검결과에 따르면 2015년 12월 30일 관계부처회의에서 외교부는 소관 부처와 별도 협의 없이 재단 등록 부처를 여가부로 명시한 ‘재단 설립계획(안)’을 제시했고, 이듬해 1월 6일 “조용하고 신속하게 설립을 추진하라”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여가부에 전달했다.

당시 외교부는 ‘재단에 관련 민간단체 참여는 배제하고 중립적이고 건전한 민간 인사를 참여시킬 것, 1월 중 재단 설립을 위한 민관 TF 발족을 완료할 것’ 등의 대통령 지시사항을 여가부에 구두로만 전달했고, 여가부는 당시 지시사항을 내부문서로 작성해 남겼다.

이후 TF 발족 등을 거쳐 작년 7월 28일 재단이 출범했는데 설립과정에서 절차상 위법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가부가 신청일로부터 평균 20일이 소요되는 법인설립허가를 5일 만에 처리하는 등 재단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정황이 확인됐다. 특히 설립허가를 위해 필수적인 법인사무실의 임대차 계약을 여가부 소속 직원이 대리로 체결했는데 이는 통상적인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여가부는 밝혔다.

윤효식 여가부 기획조정실장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재단을 설립, 운영하려다 보니 일반적인 재단 설립 절차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절차적 하자는 있었지만 설립 자체를 부정할 만큼의 문제점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여가부가 2016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예산의 일부를 재단의 인건비, 관리비 등 운영비 명목으로 지원한 과정에서도 관련 규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등을 수행하는 민간단체에 경비를 보조할 때에는 해당 단체가 관련 사업을 수행한 실적이 있어야 함에도 사업 실적이 없는 재단에 국고를 보조했으며, 국고보조 전에 받아야 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심의위원회’의 심의도 받지 않았다.

재단이 피해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회유·종용이 있었다는 그간의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재단은 한·일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낸 10억엔으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에게 1억원을, 사망자 유족에게 2천만원을 치유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사업을 해왔다.

외교부와 여가부, 재단 관계자들은 생존 피해자들로부터 현금지급 동의를 얻기 위해 개별 면담을 개인별로 적게는 1차례에서 많게는 7차례까지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일 합의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현금수령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거나 설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면담 녹취록 등에 따르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동안에는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 안 했어요. 그런데 합의할 때는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도 인정하고…”, “받을 건 받아야죠. 할머님 받으셔야죠. 돌아가시고 난 다음엔 해주지도 않아요.” 등의 발언이 있었다.

피해자가 노환이나 문맹 등으로 지급 신청서를 작성하기 곤란한 경우 보호자가 대리로 작성했는데, 일부 피해자의 경우 보호자의 설명에 ‘으으’ 같은 의성어만 반복해 정말로 현금수령 의사를 표시한 것인지 불분명하며, 설사 동의했더라도 지급되는 현금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도 있다.

재단은 총 246명의 피해자 중 현재까지 92명에게 현금지급을 완료, 재단에 현재 남아있는 기금은 61억원이다. 생존 피해자 47명 가운데 현재까지 면담이 성사된 피해자는 38명이며, 이 중 34명에게 현금지급을 완료했다. 사망자 199명 중에서는 68명의 유족이 현금지급을 신청했고 58명에게 지급이 완료됐다고 여가부는 밝혔다.

여가부는 이날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사업’ 지원을 중단한 것에 대한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여가부는 2015년까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위탁 운영 사업자로 지정하고 예산을 지원했으나 2016년부터는 이를 중단했다.

조사 결과 2016년 1월 6일 “유네스코 등재 지원 사업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관여하지 말고, 추진과정에서 정부 색을 없애도록 하라”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가 전달돼 사업 지원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실은 이후에도 여가부에 유네스코 등재 정부지원은 한일 합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고 전달했다.

여가부는 당시 중단 사유에 대하여 “유네스코 등재는 민간추진 원칙으로 정부지원이 부적절하고 정부지원 시 관계국의 반발로 오히려 심사에 불리하다”고 설명했었다.

당시 청와대는 이밖에도 ‘일본군 위안부 국외자료 조사 사업’에 공모한 기관의 책임연구원이 한일 합의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활동을 한 것을 문제 삼아 이 기관이 선정에서 배제되도록 하는 등 위안부 관련 사업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부는 이번 점검과 관련, “한일 합의 발표 이후 화해·치유 재단 설립과 운영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현금지급사업 집행과정에서도 할머니들께 갈등과 심적인 고통을 드린 것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 재단 운영 방향이나 해산 여부 등에 대해서는 “이번 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와 판단이 필요하다”며 “관계기관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태현 초대 이사장이 지난 7월 사임함에 따라 재단 이사직은 현재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다. 재단 정관에 따르면 재단 임원을 선임하거나 재단을 해산하는 등 주요 사안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여가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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