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댓글부대 전성시대/임창용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7-12-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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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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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창용 논설위원

요즘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기사가 댓글을 위한 하나의 숙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러가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보다는 어딘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기사에 기생하는 듯해 보여서다. 댓글에 소통과 논쟁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비호, 욕설만 가득하다. 중구난방인 듯해 보이지만 질서가 느껴지고, 일정한 의도가 읽힌다. 이런 댓글들은 대개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다.

제천 화재를 다룬 ‘건물 도면도 안 챙기고 불 끄러 간 소방대’란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자. ‘어떻게든 소방관 탓으로 몰고 가려는 것들’, ‘그만 뒷북 좀 치세요 기레기들아’ 등이다. 상위에 포진한 댓글들 대부분은 이처럼 소방관은 건드리지 말라는 내용들이다. 연기가 꽉 찬 대형 건물에서 도면이 없으면 눈을 가리고 뛰어드는 것이나 매한가지일 터다. 뻔한 사실은 외면하고 비호·비난에 여념이 없다. 이게 순수한 일반 네티즌들의 댓글일까?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슈가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사들은 인터넷에 올라가기 무섭게 비정규직 종사자들을 비난하는 댓글 쓰나미에 쓸려 버렸다. 무임승차 말고 시험 보고 들어오란 내용이 대부분인데 표현이 원색적·모욕적이었다. ‘발악’ ‘무식’ ‘꼴값’ 등 인신모독적인 표현이 수두룩했다. 학교 사정을 모르면 달기 어려운 댓글이 많아 댓글 세력이 누군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런 댓글들은 영향력이 있을까? 매우 강력해 보인다. 여론 형성과 정부의 정책이란 두 가지 측면 모두 그렇다. 제천 화재 직후 쏟아졌던 소방대 대응의 문제점을 다룬 기사들이 비난 댓글 더미에 잠시 주춤해졌다. 반면 소방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소방장비 문제 등은 더 부각됐다. 학교 비정규직과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무산됐다. 기자는 댓글을 애써 무시하는 척하면서도 민감하다. 교육 당국도 학교 비정규직 기사를 덮은 엄청난 댓글 더미들을 수십만 정규직 교사들의 압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 국가정보원이 자행한 댓글 공작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국정원이 수십 개의 민간 외곽팀을 구성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다. 정권을 옹호하거나, 비판 세력을 음해하는 댓글들을 전방위적으로 인터넷 포털과 SNS의 기사에 달았다고 한다. 특히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들 댓글부대가 위세를 떨쳤다. 댓글이 위력적인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다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해나 목적이 비슷한 사람들의 분노만 자극할 수 있으면 된다. 대부분 짧지만 누군가의 상처를 헤집는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강한 요즘 기사에 작은 허점만 보여도 순식간에 ‘기레기’란 표현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특정 세력에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내용을 담으면 더 그렇다. 이런 댓글들은 수백 개의 ‘좋아요’ 호응 속에 댓글 상위에 노출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수행 기자 2명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기레기는 맞아도 싸다’란 취지의 댓글들이 관련 기사를 덮다시피 했다. 기자가 바닥에 쓰러져 밟히는 사진을 보면서도 “그러게 평소에 잘해야 우리가 실드를 쳐 주지”란 경악스러운 댓글을 다는 사람들. ‘우리’, ‘실드’(shield)란 표현에서 조직과 폭력의 냄새가 난다.

놀라운 것은 청와대 고위 참모를 지낸 지식인까지 거기 합류해 경호원들의 폭행을 정당방위라고 옹호한 점이다. 나중에 ‘집단폭행 사실을 몰랐다’며 사과했지만, 이는 외려 댓글의 힘이 그만큼 세다는 방증이 아닐까. 지식층조차도 기사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댓글에 의존해 시비를 가르고 있음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장 이후 댓글은 기성 언론이 독점했던 여론 형성 기능의 한 축을 맡아 왔다. 댓글저널리즘이란 용어가 보편화된 지도 오래다. 한데 소중한 온라인 토론의 장이 돼야 할 댓글저널리즘이 고사 위기다. 특정 정파와 이념, 이해를 위한 댓글부대들의 분탕질 때문이다. 적폐청산의 시퍼런 칼날 앞에 관제(官製) 댓글부대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우후죽순 돋아나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사제(私製) 댓글부대들은 어찌해야 하나.

sdragon@seoul.co.kr
2017-12-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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