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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하룻새 두번 “난징 동병상련”… 한·중 신뢰 회복 강한 의지

文 하룻새 두번 “난징 동병상련”… 한·중 신뢰 회복 강한 의지

임일영 기자
임일영 기자
입력 2017-12-13 18:08
업데이트 2017-12-1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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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대학살’ 고강도 언급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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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13일 오전 베이징 서우드 공항에 도착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17. 12. 13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중국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13일 오전 베이징 서우드 공항에 도착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17. 12. 13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13일부터 3박 4일 간 중국 국빈 방문 일정에 돌입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날 화두는 ‘동병상련’이란 표현에 담겨 있다. 방중의 최대 목표를 한·중 신뢰관계 회복에 맞춘 청와대는 그동안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무너진 신뢰를 복원해 수교 25주년에 걸맞은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 왔다. 문 대통령이 방중 첫날 두 번의 연설에서 난징대학살을 강도 높게 언급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의 산물로 해석된다.

일본군에 의해 30만명이 잔혹하게 숨진 난징대학살(1937년 12월 13일~1938년 2월)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간직한 중국인들의 고통에 동질감을 전하며 진심으로 다가서려는 의미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3년 전 난징대학살 추모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정도로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중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철학에 대한 지지의 의미도 실려 있다.

문 대통령은 재중 한국인간담회와 한·중 비즈니스포럼 연설에서 난징대학살 80주년을 상기시키며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겪은 이 고통스러운 사건에 깊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며 ‘동병상련’을 강조했다. 또 “함께 항일투쟁을 벌이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 왔다”고도 했다. 이어 “동북아의 미래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과거를 성찰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 과거사를 외면해온 일본을 에둘러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선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동병상련을 겪은 양국 관계가 사드 갈등으로 휘청거렸지만, 10·31 합의로 ‘봉인’한 만큼, 관계 복원을 넘어서 새로운 미래를 열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실상 일본의 역사인식 부재를 거론한 것도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중국인과 시 주석에게 난징대학살 80주년이 갖는 역사의 무게를 감안해 청와대는 당초 한·중 비즈니스포럼의 연설문에서만 언급할 계획이었다. 일각에선 이조차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다고 한다. 북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한·미·일 공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논의를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에서도 난징대학살을 언급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동병상련’이란 표현을 문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는 오전부터 감지됐다. 문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1호기가 착륙한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당연히 나와 있어야 할 노영민 주중 대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 알고 보니 전날 밤 베이징에서 난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급하게 몸을 실었다.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 추모일’을 제정한 날인 2014년 12월 13일 난징에 세워진 추모비 앞으로 인민군 의장대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추모비에는 한글을 비롯한 각국 언어로 ‘조난자 30만’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시에서는 30만명 이상(중국 측 추정)의 중국인이 일본군 총칼에 처참하게 숨졌다. 난징 EPA 연합뉴스
중국에서 처음으로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 추모일’을 제정한 날인 2014년 12월 13일 난징에 세워진 추모비 앞으로 인민군 의장대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추모비에는 한글을 비롯한 각국 언어로 ‘조난자 30만’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시에서는 30만명 이상(중국 측 추정)의 중국인이 일본군 총칼에 처참하게 숨졌다.
난징 EPA 연합뉴스
추모식은 예고된 행사였다. 세계적인 추모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중국 정부가 베이징에 있는 각국 대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도 한참 전의 일이다. 시 주석이 직접 참가한다는 결정도 지난 11일 공식화됐다. 당초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는 공사참사관급을 염두에 뒀다가, 변영태 상하이총영사를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대사가 직접 참석해서 그 뜻을 기리는 게 좋겠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사의 행보는 14일 정상회담과 무관치 않다. 지난달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시 주석은 사드 문제를 어떻게든 언급할 것으로 보이지만, 청와대는 원치 않는다. 앞서 중국중앙(CC)TV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역지사지하면서 단숨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시간을 두며 해결하자”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한국과 중국은 일본 군국주의 침략의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고, 중국은 이른바 꺾어지는 해(80주년)를 매우 중시하며, 60여개 국가 사절단이 추모식에 참석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도착한 시간에 정작 초대국의 국가주석은 난징에서 추모식을 치르는 마당에 거기에 대사까지 보낸 것은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소식통은 “지금은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베이징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7-12-1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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