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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檢, 산재 브로커 제대로 수사 안 했다”

법원 “檢, 산재 브로커 제대로 수사 안 했다”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17-11-21 18:16
업데이트 2017-11-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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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등급 조작 청탁·뇌물 혐의

산업재해 장해등급 조작을 청탁하며 뇌물을 주고받아 구속기소된 산재 브로커들과 근로복지공단 직원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일부 뇌물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는 21일 산재 브로커 김모(54)씨에게 뇌물공여와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과 추징금 2억 6656만여원, 또 다른 산재 브로커 임모(38)씨에게는 김씨를 통해 공단 직원에게 제3자 뇌물을 교부한 혐의로 징역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모(52) 전 공단 과장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과 벌금 5000만원, 추징금 4270만원을 선고했다.
 공단 경기지역의 A지사 보상부에 근무했던 이 전 과장은 2010년 9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산재환자들의 장해등급 심사를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브로커 김씨에게서 65회에 걸쳐 총 873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3월 구속 기소됐다. 또 2007년 다른 브로커 김모(2015년 사망)씨에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할부금으로 375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높은 수준의 청렴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지위에도 브로커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금품을 수수했다”며 1심 구속기한 직전 직권보석으로 풀려났던 이 전 과장을 다시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다만 “장해등급 업무를 부정 처리한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브로커 김씨와 임씨는 이 전 과장에게 청탁할 목적으로 2010년 7월부터 2013년 3월 사이 1억 3570만원의 돈을 주고받은 혐의(제3자 뇌물교부 및 수수)가 유죄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전 과장이 김씨에게 873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무죄로 판시하며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에도 별도로 ‘수사과정 및 공소사실 자체의 문제점’을 적시했다. 김씨가 사용한 본인 명의와 차명계좌를 통해 2010년 이전에도 산재 브로커로 활동한 것이 확인되고 2010년 이후에도 A지사 환자 건을 비롯해 다른 브로커와 공단 직원들의 돈거래 정황이 포착됐지만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고, 공소장에서도 빠졌다. 재판부는 “이로 인해 김씨의 죄책이 가벼워졌고 추징금액도 감소했다”고 꼬집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또 브로커들이 이 전 과장에게 청탁했다는 환자들 명단만 있을 뿐, 어느 지사 환자이며 어떤 청탁을 했는지 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전 과장에게만 장해등급 심사 편의를 부탁을 했다”고 김씨가 진술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재판부는 “(김씨의) 공소제기 되지 않은 범행이 훨씬 많고 다른 공단 직원들에게도 뇌물을 줬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김씨에 대해 “추가 범행을 은폐하고 양형과 추징을 줄이기 위해 허위진술을 하며 수사기관과 재판부를 농락했다”며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량(징역 3년)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다. 피고인 중 유일하게 이 전 과장에 대해서만 추진보전명령을 청구했다.
 한편 반 년 넘게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는 김씨가 검찰 조사를 받던 지난 3월 지인에게 “추징은 엄청 줄여 놨어”, “내 통장은 하나도 안 털었어”라고 말하고 4월엔 “27억 걸렸어”라고 말한 구치소 접견 녹취록도 공개됐다. 임씨도 구치소에서 가족들에게 지난 1월 “26억원 변호사법으로 맞을 것 같아”라거나 재판이 시작될 무렵인 4월 “공무원을 잡아서 나한테 공적을 준대. 형을 6개월 줄여주든가 하는” 등의 석연치 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혐의가 축소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나 플리바게닝(수사 협조 피의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감형 협상)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17-11-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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