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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간장 도둑과 불효/최광숙 논설위원

[길섶에서] 간장 도둑과 불효/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7-11-15 23:34
업데이트 2017-11-1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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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집에서 만든 간장을 먹었다. 어머니의 간장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나물도 조물조물 무쳐 먹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간장을 담그셨다. 사다 먹으면 되는 간장까지 병중에도 힘들게 담그시냐고 자식들의 만류가 거셌지만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간장을 정작 자식들은 맛도 보지 못했다. 아파트 공간이 비좁아 커다란 간장 단지를 다니시던 절 앞 동네 노인정의 마당 한쪽에 뒀다. 그런데 누군가 한 바가지씩 그 간장을 독채로 다 퍼다 먹은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의 간장이 귀한 줄 모르고 ‘간장 보시’를 한 어머니의 덕을 마음속으로 칭송했다.

얼마 전 방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와대 만찬에 사용된 360년 된 씨 간장이 화제가 됐다. 외신에서 “미국보다 오래된 간장이 메뉴로 제공됐다”고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장도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을 수 있었는데 싶어 새삼스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떤 방법으로도, 억만금을 줘도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어머니의 손맛을 지키지 못한 것도 불효 아닐까.

bori@seoul.co.kr
2017-11-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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