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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에세이] 60달러 넘어선 국제유가를 보며/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수요 에세이] 60달러 넘어선 국제유가를 보며/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입력 2017-10-31 23:00
업데이트 2017-10-3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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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2년 4개월 만에 드디어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끌고 있는 사우디와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가 감산 합의를 내년 9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2014년 하반기 이후 급락했던 원유가가 다시 상승 기조를 유지할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원유가가 바닥을 찍은 게 아닌가 하는 기대 섞인 전망을 조심스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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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
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
처음 유가가 급락했을 땐 우리에게 축복인 줄 알았다. 우리 경제구조는 에너지 다소비형인 데다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이나 해외 건설 같은 수주산업에는 긴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선 자원개발 기업들이 타격을 크게 받았다. 고유가 시절에 사두었던 해외유전 자산들이 수익은커녕 부실로 남게 되었다. 조선이 뒤를 이었다. 신규 선박 발주가 뚝 끊기고, 선주들은 계약을 취소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건조된 배의 인도를 미룸에 따라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유, 석유화학 등 우리의 주력 플랜트 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주량이 전성기에 비해 반토막 나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수주를 해도 수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였다. 유가 하락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입은 손실 규모를 합산해 보면 아마도 원유 수입에서 줄어든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지 모른다. 저유가가 오히려 우리 경제 불황의 골이 깊어지는 데 일조했음 직하다.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를 벗어나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경제도 지난 3분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1.4%(전기 대비)를 기록함에 따라 연간 성장률이 3%를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와 북핵 사태에도 불구하고 회복 기조로 돌아섰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금융 지원을 노크하는 빈도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우리 수주 산업에 긴 먹구름이 걷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래로 힘차게 나가기 위해서 새롭게 할 부분이 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감원과 설비감축 등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 20여년의 산업발전을 가져왔다. 수주산업은 그 시기에 확장일로를 걸어왔다. 당시 원화환율의 급등은 우리 수주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중동, 동남아 등 주력시장에서 역사상 최대의 수주 실적을 보였다.

그러나 기본설계역량이 부족하고 사업개발과 관리 역량이 미흡한 가운데 이뤄진 확장 전략은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위기 시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상당 기간 수주가 안 되어도 일감이 충분해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던 기업이 큰 규모의 손실과 유동성 부족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 우리 국민을 실망시킨 사례까지 있었다. 계약 내용도 위기 시에 발생한 손실을 발주자로부터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공사를 끝내고도 충분한 보상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외형 확장에 앞서 사업개발 및 관리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최근 들어 도로, 병원 등 인프라와 발전소, 석유화학 플랜트 발주 방식이 투자개발형으로 변하고 있다.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도 과거에 자기자금으로 공사를 발주하던 관행에서 수주기업에 직접 투자를 하게 하고, 프로젝트 금융을 조달해 올 것을 요구한다.

국제 원유가가 약세인 까닭에 재정이 튼튼하지 못해 수주기업에 자금을 가져오라는 것도 있지만,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배워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려는 뜻도 있다. 그러다 보니 수주기업의 입장에서는 역량 있는 운영 사업 파트너를 찾고, 공사비뿐만 아니라 공장 가동에 필요한 자금까지 마련해야 한다. 사업자금 회수 기간도 훨씬 길어지는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좀더 면밀한 사업성 분석과 장기간 위험을 관리하는 역량까지 키워야 한다.

반성이 없으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업은 경기 확장기에 순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위기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도산에 이른다. 핵심 기술 역량이 없으면 새로운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고 찾더라도 헐값에 팔려 나간다. 새롭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근본을 돌아보고 혁신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2017-11-0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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