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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읽고 실컷 쓰길…책방 주인 시인의 꿈

실컷 읽고 실컷 쓰길…책방 주인 시인의 꿈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10-24 22:02
업데이트 2017-10-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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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일산에 책방 열어…“눈치 안 보고 글쓰는 공간”

권하고 싶은 2000권 빼곡
31일 첫 낭독회… 책 추천도


오래 머물러 있길 바란다. 끈기 있게 읽고 쓰라고 탁자도 의자도 욕심껏 비싼 것으로 골랐다. 빨리 먹고 빨리 나가길 바라는 여느 가게들의 잇속과는 정반대의 풍경을 꿈꾼다. 그래서 간판 뒤에 심어놓은 바람도 남다르다.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에게 창작의 열기가, 훌륭한 작품이 나오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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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주인으로서의 삶이 시 쓰기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김이듬 시인은 “현실에 발붙이는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 써온 것과는 다른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서점 주인으로서의 삶이 시 쓰기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김이듬 시인은 “현실에 발붙이는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 써온 것과는 다른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우리 시단에 독특한 목소리를 불어넣어 온 김이듬(48) 시인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오던 공간을 서점으로 꾸렸다. 고양시 일산동구에 세운 ‘책방이듬’이다. 정식 오픈을 이틀 앞둔 지난 23일 호수공원 앞에 자리한 서점은 통창으로 가을볕을 맞으며 여물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 해에 절반은 해외에 머물며 강의하고 사람을 만나고 시를 써온 그는 왜 ‘정주’해야 하는 서점 주인을 자처했을까.

“외국에 가면 남들은 미술관이나 관광지에 가는데 저는 늘 서점을 찾아다니게 돼요. 작년엔 미국에서 시집이 번역·출간돼서 미국 8개 도시를 돌며 동네 작은 책방에서 시를 낭독했어요. 그곳에서 친구 집에 놀러 오듯 자연스럽게 찾아와 문학을 즐기는 노부부, 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부, 생기 넘치는 중고등학생 등을 보며 ‘왜 우리는 삶 속에서 문학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12평 남짓한 서점 안에는 2000여권의 책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절반은 시집이고 또 절반은 시인의 애장 서적들이다. 떠남과 머묾을 되풀이해온 시인이 끝끝내 간직해온 희귀본들과 새로 주문한 책들이 어우러진 서가는 시, 소설, 철학, 에세이 등 분야와 주제도 다양하지만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점에서는 교집합을 이룬다.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방을 모든 예술을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싹 틔울 계획이다. 31일부터는 일산·파주에 사는 작가들이 이끄는 ‘일파만파 낭독회’가 시작된다. 파주에 사는 김민정 시인이 첫 주자로 10월의 마지막 밤을 시로 채색한다.

“우리는 작가들이 마음 놓고 글 쓸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낭독회도 누가 불러줘야 하는 수동적인 행사가 됐고요. 책을 읽고 싶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눈치 안 보고 머물고, 내 작품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으면 스스로 낭독회를 꾸려보는 곳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시인뿐 아니라 소설가, 희곡작가, 에세이스트, 번역가, 사진작가 등 모든 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연, 낭독회를 열어 보통 사람들에게 일상 속 특별한 이야깃거리와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책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1대1 책 처방사’로도 활약할 계획이다. 책은 읽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지 모르는 독자들이 많다는 데서 착안한 것. “등단하기 전 습작 시절 저만 해도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가 늘 절실한 물음이었거든요. 요즘 기분은 어떤지, 관심사가 뭔지 세심히 물어서 누군가에게 ‘책 여행의 동반자’로 곁을 내주고 싶어요. 그게 제가 보통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재능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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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한 동네 주민이 불쑥 들어와 글쓰기 모임은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처음 보는 주민의 조언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는 시인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일기, 편지 등 글쓰기 모임도 가질 것”이라고 눈을 빛냈다. “파리만 가봐도 랭보가 드나들었던 곳, 릴케가 시 썼던 곳 등이 유명하잖아요. 누가 아나요. 책방이듬을 거쳐 간 사람이 위대한 작가가 돼서 ‘그 작가가 호수공원 옆 책방에서 10년 단골로 글을 썼대’ 소문나 명소가 될지도요.”(웃음)

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사진 이호정 전문기자 hojeong@seoul.co.kr
2017-10-2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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