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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가 썼을까…1300년 전 신라 ‘첨단 수세식 화장실’

태자가 썼을까…1300년 전 신라 ‘첨단 수세식 화장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9-26 22:34
업데이트 2017-09-27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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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 관련 시설 일체 첫 발굴

신라 왕궁 별궁터인 동궁·월지
‘고급’ 화강암 변기·건물터 발견
바닥에 전돌 깐 배수시설까지
발달된 왕실의 화장실 문화 가늠


신라 태자가 쓰던 화장실이었을까. 태자가 살던 신라 왕궁의 별궁터인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1300년 전 수세식 화장실이 발견됐다. 국내에서 변기와 배수 시설, 화장실 건물터를 두루 갖춘 화장실 시설 일체가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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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올려놓고 쪼그려 앉아 볼일을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변기형 석조물과 그 아래 놓인 타원형의 구멍 뚫린 석조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발을 올려놓고 쪼그려 앉아 볼일을 봤을 것으로 추정되는 변기형 석조물과 그 아래 놓인 타원형의 구멍 뚫린 석조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2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경주 인왕동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북동쪽 발굴 지역에는 화강암을 둥글게 깎아 만든 변기와 전돌을 타일처럼 바닥에 깐 ‘고급형 고대 화장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두 칸으로 나뉜 넓이 24.7㎡의 화장실 건물터. 이 가운데 한 칸에 구멍 뚫린 타원형 화강암 변기(길이 90㎝, 너비 56㎝)가 배수시설과 연결돼 놓여 있었다.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본 뒤 지름 12㎝의 구멍에 물을 흘려보내면 오물이 경사진 암거(지하에 고랑을 파 물 빼는 시설)를 따라 빠져나간다. 고대의 수세식 변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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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형 변기 석조물 왼쪽 위쪽으로 지하에 고랑을 파 오물과 물을 빼낸 암거 등 배수 시설, 암거 시설을 덮은 전돌 등이 확인된다.
타원형 변기 석조물 왼쪽 위쪽으로 지하에 고랑을 파 오물과 물을 빼낸 암거 등 배수 시설, 암거 시설을 덮은 전돌 등이 확인된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 유구는 먹고 배설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활상이 왕실 내부에서 문화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 유적”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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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시설과 배수시설이 연결된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변기시설과 배수시설이 연결된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당초 발굴 당시에는 구멍 뚫린 변기 위에 두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길이 175㎝, 너비 60㎝ 크기의 판석 석조물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판석 석조물은 좌우를 바꿔 아귀를 맞추면 과거 불국사에서 발견된 변기 형태의 석조물(8세기)과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

장은혜 학예연구사는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쓴 변기와 변기 아래와 배수시설 바닥에 전돌을 깔아 마감한 것 등은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잘 보여 준다”며 “일본에서도 7세기 후반~8세기 화장실 유구가 다수 출토됐지만 건물터와 변기·배수 시설이 다 갖춰진 채로 나온 적은 없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백제 유적인 전북 익산 왕궁리에서 처음 공동 화장실 유구(7세기)가 발견된 바 있다. 당시 유구의 토양에서는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이 다량 나왔다. 신라 왕족의 화장실에선 어땠을까.

박윤정 학예연구관은 “지난 5월 유구 내 토양을 조사했으나 물을 부어 흘려보내는 수세식인 데다, 미생물이 잔존하기 힘든 모래 알갱이만 퇴적돼 있어 기생충 알은 없었다”며 “인근에 저수조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배수로 위로 철로(동해남부선)가 지나고 있어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간 나오지 않았던 출입문인 동문으로 추정되는 건물터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돼 주목된다. 남북 길이 21.1m, 동서 길이 9.8m인 대형 가구식(架構式·목조가구처럼 돌을 짜 맞추는 방식) 기단 형태로, 화려한 계단과 2m 이상의 대형 돌로 쌓은 10개의 적심(積心·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 등이 상당한 규모였음을 짐작케 한다.

통일신라 이전에 조성된 길이 110m의 대형 배수로바닥층에는 이례적으로 소 골반뼈가 소형 토기와 함께 발견됐다. 박윤정 학예연구관은 “배수로 폐기 시점에 소 골반뼈를 묻은 것은 이후 새 건물을 세우기 위해 안전을 기원하는 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통일신라 때 어린 사슴과 토기를 묻고 의례를 지낸 뒤 폐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깊이 7.2m의 우물에서는 고려 시대 인골 4구가 출토됐다. 30대 후반 남성인 성인 인골과 8세 미만의 소아, 3세 이하의 유아, 6개월 미만의 영아 등으로, 인골이 묻힌 배경 등 고고학 연구 결과는 올해 말 나올 예정이다.

경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9-2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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