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의 문화로 세상읽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제언

[강명구의 문화로 세상읽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제언

입력 2017-09-24 23:14
수정 2017-09-2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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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국정원의 언론 통제와 조작, 언론인·연예인 블랙리스트 등이 문서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KBS, MBC 정상화 문건 등이 밝혀지면서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언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분노가 치밀고 참담한 심정이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나 싶은 허탈감이 다시 든다. KBS, MBC 노동조합은 두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했다.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자, PD, 연예인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싶었어도 국가 안보의 핵심 기구인 국가정보원을 동원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그걸 알고 협력했던 두 방송사의 사장과 간부들의 후안무치와 비열함은 경악을 넘어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두 공영방송 사장들이 자진 사퇴하는 게 순리다. 국정원 지시를 받아 적극적으로 시행한 패악이 그러하면 상식의 수준에서 사과하고 물러나는 게 자신들을 그나마 지키는 길일 것이다. 어떻게든 임기를 지키려 하면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방송국도 망가지고 자신들도 망가지지 않겠는가. 파업하는 공영방송의 언론인들 그리고 청와대, 언론정책 관련 부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몇 가지 제안을 드린다.

첫째, 국정원과 청와대가 주도한 언론 조작을 성역 없이 밝혀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KBS, MBC 사장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주면 좋겠다. 필자는 1997년 김대중 정부 출범에 앞서 젊은 언론학도로서 새 정부 언론정책의 제1번은 공영방송 사장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이런 요구를 새삼 다시 하게 됐다. 이런 선언만 실천된다면 성역 없는 언론 적폐 청산이 정치보복이 아닌 게 자연스럽게 입증될 것이다.

둘째, 언론정책의 근간을 바꿀 때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더이상 언론 조작과 날조, 설익은 프로파간다에 의존할 까닭이 없다. 집권 이후 개혁 드라이브는 언론들이 도와준 게 아니고 시민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탄핵을 이끌어 내고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 과정에서 공영방송을 포함해 유력 언론은 반민주의 편에 섰었다. 만일 이 유력 언론들이 영향력이 강하고 박근혜 정권의 언론 조작이 효과를 발휘했다면 촛불혁명이 가능했겠는가.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어젠다 세팅을 통해 여론의 향배를 가른다고 믿고 있는 종이신문, 특히 유력 신문의 영향력은 이미 쇠퇴했다. 다만 파워 엘리트들이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 KBS, MBC 사장 인사는 총리급 인사의 비중을 갖는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까닭이 없게 됐다.

셋째, 홍보 선전기구로서 방송과 SNS 미디어에 대한 정책을 근본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방송(broadcasting)이라 불리는 언론 제도 자체가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로 대체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과 수많은 케이블 텔레비전을 이제 채널에 따라 ‘본방사수’하면서 보는 시대는 끝났다. 구글과 같이 검색을 통해서, SNS 친구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기사나 프로그램에 접촉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KBS, MBC 이사회 구성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방송을 홍보선전의 매체로 사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방송인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파업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지만, 지난 정권에 부역하고 국정원에 협력했던 언론인들이 나간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게 아닐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루어진 민주적 언론의 공간을 어떻게 회복하고, 정상화할 것인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문제의 핵심이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있고, 그것을 지키는 주체도 방송인들 자신이라 믿는다. 그리고 정치권력으로 진출하는 언론인들에 대해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방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장 선출 방안, 제작의 자율성 확보 방안 등을 고민해 주길 기대한다.
2017-09-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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