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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항공기다” 20m 급속 잠수… 어뢰 쏘자 12㎞앞 함정 명중

“적 항공기다” 20m 급속 잠수… 어뢰 쏘자 12㎞앞 함정 명중

박홍환 기자
입력 2017-09-17 22:28
업데이트 2017-09-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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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첫 공개 1200t 급 잠수함 ‘장보고함’ 훈련 상황 르포

지난 12일 오후 제주도 남쪽 해역. 잠망경만 내놓은 채 주변을 경계하며 스노클링 항해를 하던 우리 해군의 209급(1200t) 잠수함인 ‘장보고함’ 내부가 갑자기 긴박해졌다. 함장 김형준 해군 중령의 다급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함수 전방 적 항공기 접촉, 비상!” 그러자 승조원 모두 “비상”이라고 복창한 뒤 전광석화처럼 비상 상황에서 예정돼 있는 자신의 위치로 움직였다. 몇 초 순간에 김 함장의 “긴급잠항” 명령이 떨어지자 승조원들은 어뢰발사관 8기가 배치돼 있는 함수 쪽으로 몰려들었다. 무게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해 잠항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선체가 급격히 앞쪽으로 기울어지며 순식간에 1m, 5m, 10m, 20m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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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지난 12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209급(1200t) 잠수함인 장보고함과 이억기함의 수중 작전훈련 등을 잠수함 운용 25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은 장보고함 함교탑에서 함교당직사관들이 전방 상황을 주시하며 입항 준비 작업을 지휘하는 모습. 해군 제공
해군은 지난 12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209급(1200t) 잠수함인 장보고함과 이억기함의 수중 작전훈련 등을 잠수함 운용 25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은 장보고함 함교탑에서 함교당직사관들이 전방 상황을 주시하며 입항 준비 작업을 지휘하는 모습.
해군 제공
●폭 6m·길이 56m 터널 같은 선체 내부

수심 50m까지 내려가 잠항하던 장보고함 내부에 다시 긴장감이 돌았다. 헤드폰을 쓰고 소나(수중음파탐지장치)에서 들리는 소리신호를 귀를 세워 듣던 전탐사(소나 탐지 승조원)가 ‘전방 적 함정 탐지’를 보고한 것.

김 함장은 즉각 어뢰 장착을 명령했다. “5, 4, 3, 2, 1, 발사” 16㎞ 전방 해수면 위를 항해하는 적 함정을 탐지한 뒤 12㎞ 앞에서 발사된 백상어 어뢰는 방향을 수정해 가며 적 함정에 명중했다. 소나에 어뢰 폭음이 감지되자 김 함장은 잠망경을 올려 적 함정 격침을 최종 확인했다.

이날 해군은 209급 잠수함들인 장보고함과 이억기함의 실전 같은 잠항 훈련 모습을 잠수함 운용 25년 만에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장보고함은 209급 잠수함 1호함, 이억기함은 마지막 9호함이다. 장보고함은 1992년 10월 14일에 취역했다.

제주 서귀포의 제주민군복합항 해군기지 접안부두에서 11.5m의 수직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장보고함 내부는 마치 좁고 짧은 터널 같았다. 폭 6m, 길이 56m의 선체는 좁디좁았다. 해군 잠수함사령부 93잠수함전대 소속 장보고함의 승조원은 함장 김 중령을 포함해 모두 40여명. 한번 출항하면 한 달 이상 깊고 푸른 바닷속에서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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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기함의 타수 2명이 조종실에서 수중 작전을 위해 함장의 지휘를 받아 잠수함의 심도 및 자세각을 조정하고 있다. 해군 제공
이억기함의 타수 2명이 조종실에서 수중 작전을 위해 함장의 지휘를 받아 잠수함의 심도 및 자세각을 조정하고 있다.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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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함 내부에서 본지 박홍환 전문기자가 잠망경을 통해 잠수함 밖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해군 제공
장보고함 내부에서 본지 박홍환 전문기자가 잠망경을 통해 잠수함 밖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해군 제공
●SUT·잠대함 하푼 유도탄 등으로 무장

이날 장보고함은 제주민군복합항을 출항해 8㎞ 남쪽을 오가며 해상과 해저 훈련을 반복했다.

기지를 떠난 장보고함은 김 함장이 마지막으로 해치를 닫고 내려와 “충수(充水)” 명령을 내리면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다. 충수는 잠수함 내부의 탱크에 물을 채워 부력을 없애 잠항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디젤연료와 축전지를 사용하는 209급 잠수함은 연료 보급 없이 하와이까지 왕복할 수 있는 항속 능력을 갖췄다. 수중 250m 이상 내려가 작전할 수 있으며 최대 속력은 약 20노트(시속 40㎞)다.

무장은 중어뢰 백상어와 SUT, 잠대함 하푼 유도탄을 탑재하고 있다.

김 함장은 “해군 잠수함 부대는 지금 당장 명령이 떨어져도 적진에 침투해 임무를 완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내부 금연 기본… 소음은 철저히 통제

좁은 실내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때문에 승조원들의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세탁을 할 수 없어 빨랫감은 봉지에 밀봉해 놓았다가 입항 후 집으로 가져간다. 바닷물을 정화한 물을 사용하는데 아껴 써야 하기 때문에 샤워는 주 1회 정도로 제한된다.

환기가 안 되니 금연은 기본이고, 굽거나 튀기는 요리 또한 언감생심이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비좁은 침상이 30여개 갖춰져 있지만 이마저도 개인 침상은 아니다. 승조원 40여명이 교대로 사용해 언제나 뜨거운 체온이 남아 있어 ‘핫벙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키 큰 장병은 몸을 똑바로 누일 수조차 없다. 밥도 좁은 테이블에서 어깨를 마주 대고 먹는다.

잠수함 내부는 ‘소음과의 전쟁’이다. 적 수상함과 잠수함, 대잠 항공기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소음은 철저히 통제된다. ‘작은 소리로 대화’, ‘발소리 작게’ 등이 원칙이다.

물속에 들어가면 밤낮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당직자가 일출, 일몰 시각에 맞춰 불을 켜고 끈다. 복잡하고 민감한 장비가 많은 데다 숙련된 조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승조원은 모두 부사관 이상이다.

잠수함 승조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과정 교육 6개월, 직무 교육 6개월 등 모두 1년여의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장보고함에서 만난 한 승조원은 “가장 위험한 곳에서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2017-09-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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