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스토리 다양한 변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를 다룬 영화가 잇따라 개봉하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관련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지난해 반향을 일으킨 ‘귀향’을 기점으로 늘어나는 모양새다.
‘아이 캔 스피크’
●서사 다양화·상업영화로 지평 확대

앞선 작품들이 과거의 고통과 처참한 실상을 정면으로 직시했다면 이제는 오늘을 보여 주며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등 서사가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독립 예술 영화계를 넘어 상업영화계 쪽으로도 지평을 넓히고 있어 주목된다. 상업영화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고, 대형 배급사들이 뛰어든 점이 눈에 띈다.

●휴먼코미디 ‘아이 캔 스피크’

최근 화제가 집중되고 있는 작품은 단연 ‘아이 캔 스피크’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이 작품은 사전 정보 없이 본다면 전반부는 영락없는 휴먼 코미디다. 원칙을 따지는 까칠한 20대 구청 공무원 민재와 20년간 구청에 제기한 민원이 8000건에 달하는 ‘민원왕’ 할매 옥분의 티격태격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현석 감독은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에서 보여 줬던 알콩달콩한 감성을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입혀낸다.

민재가 영어를 현지인처럼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된 옥분은 영어를 가르쳐 달라며 민재를 쫓아다닌다. 옥분이 그토록 영어를 배우려 한 진짜 이유가 드러나며 반전을 이룬다. 원로 배우 나문희와 이제훈의 연기와 호흡이 걸출하다. 또 주변부 캐릭터들과의 앙상블 또한 돋보인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용수, 고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에 힘입어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채택된 2007년 미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를 모티브로 극화한 작품이다. 명필름이 공동 제작,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공동 배급에 나섰다. 김 감독은 “서로가 이해하고 변화하며 하나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에 앞서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14일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해 관객 385만명을 동원한 ‘귀향’의 후속작이다. 디렉터스 컷으로 보면 된다. 전작에서 러닝타임의 제약으로 편집 과정에서 빠졌던 캐릭터들의 뒷이야기와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이 보태졌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자 만든 극영화라면 이번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증거로 남기기 위한 영상 증언집”이라고 설명했다.

●‘귀향’ 후속작은 사실 증언에 초점

지난 10일 촬영을 시작한 ‘허스토리’ 또한 과거보다 현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현지에서 벌인 법정 투쟁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명의 실화를 조명한다. 이 재판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23회에 걸쳐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와 한국의 부산(釜山)을 오가며 진행되어 ‘관부(關釜) 재판’이라 불린다. 안타깝게도 2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영화에는 재판 장면이 많이 등장할 예정이라 아무래도 법정 드라마 느낌이 진할 것으로 보인다.

●허스토리·환향, 과거보다 현재에

김희애가 할머니들을 돕는 단장 역할을, 김해숙이 할머니 중 한 명을 열연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등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이 오랫동안 기획해 온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변호인’ 등 천만 영화 세 편을 빚어낸 뉴가 배급을 맡았다. 뉴 관계자는 “오늘날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기존에 익숙한 콘셉트를 넘어 영화적으로 진일보한 작품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군함도’를 만들었던 제작사 외유내강도 관련 작품 ‘환향’을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목과 소재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는데, 제목에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 외에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이들을 지칭하는 역사적 의미도 함축되어 있어 역시 과거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예상된다.

윤성은 평론가는 “대중이 대면하기가 쉬운 소재가 아니고 또 소재의 무게가 있다 보니 다큐멘터리가 더 진정성이 있다는 인식이 많았는데 ‘귀향’의 성공으로 이러한 분위기가 옅어지며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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