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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택시운전사’와 ‘군함도’/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택시운전사’와 ‘군함도’/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입력 2017-08-22 17:52
업데이트 2017-08-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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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처음 기세는 단연 영화 ‘군함도’(감독 유승완)였다. 개봉 첫날 2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며 100만명 가까운 관객 동원. 그야말로 언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느냐만 남은 듯했다.

그러나 개봉 4주를 맞이한 지금 ‘군함도’는 700만명도 채우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으며, ‘택시운전사’(감독 장훈)가 개봉 3주 만에 ‘19번째 1000만 관객 영화’의 주인공이 되면서 흥행 가도를 씽씽 달리고 있다.

이 같은 결과가 스크린 독과점 논란 때문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물론 어느 때보다 ‘상생’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를 포기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역대 ‘1000만 관객 영화’ 대부분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대박’에 성공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희비 교차는 결국 영화에 있을 것이다. 특히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더욱 그렇다. 또 하나가 있다. 영화가 가진 사회적 관심도와 관객의 정서다. 지금까지의 전례에 비춰 하나만 가지고는 우리 영화시장에서 1000만 관객까지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공통점을 가졌다. 국민적 공감과 관심을 가질 만한 근현대사의 한 부분, 비교적 탄탄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 연기파 배우들. 그러나 그 역사 속을 걸어가는 길이 달랐다. ‘군함도’는 제 기분껏, ‘택시운전사’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어차피 둘 다 사실에 상상력을 섞었지만, 그 선택의 다름이야말로 영화의 완성도는 물론 사회적 공감의 높이와 크기를 가른 셈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하나는 강박이고, 하나는 무시다. 사실만을 다뤄야 한다는 강박은 영화를 엉성한 역사책으로 만들고, 무시는 역사의 왜곡과 과장을 낳는다. 그럴듯하게 그때의 집을 짓고, 옷을 입고, 멋을 부린다고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발판 삼아 영화는 그 시대의 인간들과 대화하고 충돌하고 화해하면서 걸어가야만 한다.

“이 영화에서 시대와 역사는 배경일 뿐”이라며 역사와 인간을 동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역사에 대한 불경이고 무책임한 태도다. 어떤 의도가 숨어 있든, 상업적 전략이든 허구와 과장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역사는 그곳을 지나온 사람들의 것이기에 그 진실이 누구 한 사람, 영화 한 편, 아니면 밀실의 합의로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함도’의 치명적 실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에 영감을 받은 창작’이라고 해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우겨도 군함도에서 관객들이 마주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진실이지 어설픈 자기 각성이나 온갖 허구와 익숙한 플롯을 동원한 대탈주 활극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함도’는 아직도 살아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들이 있다. 영화를 비판하면 그 영화가 담은 소재와 인물, 사건까지도 부정적으로 본다는 오해를 받는. 이를테면 ‘1980년 5월의 광주’를 용기 있게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까지 꺼렸던 ‘화려한 휴가’가 그랬다. ‘택시운전사’도 비슷하다. 더구나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나 정서를 감안하면.

이 영화 역시 사실과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비현실도 있고, 과장도 있고, 상업적 계산의 쓸데없는 액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군함도’처럼 역사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활극을 만들지도, ‘화려한 휴가’처럼 격정에 사로잡혀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그날의 진실을 오롯이 드러내자는 것도 아니다. 할 수도 없고, 맞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운전사’는 그날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곳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객관적 ‘사실’로 보여 주려고 했다. 그날의 광주를 취재한 한 외신기자와 그를 태워 준 서울의 택시운전사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들의 시선과 마음으로 영화는 진실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고, 젊은이들도 1980년 5월의 광주를 선입견 없는 가장 보편적인 인간적 정서로 만난다. 영화도 이렇게 역사 앞에서는 겸손하고, ‘인간’에게 진실해야 한다. ‘1000만 영화’는 결코 행운이나 얄팍한 계산으로는 얻지 못한다.
2017-08-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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