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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 황우석사태에 발목잡힌 ‘박기영 인사’…과학계 ‘환영’

11년전 황우석사태에 발목잡힌 ‘박기영 인사’…과학계 ‘환영’

입력 2017-08-11 19:53
업데이트 2017-08-1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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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진실성 최고의 가치로 치는 과학기술계 속성 가볍게 본 결과본인은 끝까지 ‘부당’ 항변…과기혁신본부 안착 다소 늦춰질듯

‘실세 본부장’이 될 것으로 전망되던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년전 황우석 사태에 발목이 잡혀 임명 발표 나흘만에 하차했다.

세계 과학 역사상 최악의 연구부정행위 사건 중 하나인 ‘황우석 사태’에 깊이 연루된 박 본부장이 연간 20조원에 가까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관리하는 자리를 맡아서는 안 된다는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런 반발은 연구의 진실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과학기술계의 속성상 당연한 것이었으나, 이 점을 감안하지 않고 청와대가 안이한 판단에 입각해 인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청와대가 비교적 빠르게 여론을 수렴하고 당사자가 결단을 내린 점에 대해서는 과학기술계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박 본부장 낙마의 근원이 된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은 2005년 말과 2006년 초에 걸쳐 전모가 드러났다.

연구비 확보·사용 과정의 비위와 실험용 난자 확보 과정의 심각한 생명윤리 위반도 밝혀졌다.

황 전 교수의 ‘과학 사기’가 드러나기 전에 박 본부장은 2004년 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정부가 황 교수에게 파격적·전폭적 지원을 하는 데 중심 역할을 맡았다.

의혹 폭로 초기인 2005년 11월 말에는 황 전 교수 연구팀의 생명윤리 위반 의혹을 반박하는 보건복지부의 발표 과정에도 관여했다.

그는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된 후 황 전 교수가 2004년 낸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진상조사 결과 연구에 기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명백히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는 사례였으나, 박 본부장은 보좌관직에서 물러났을 뿐 순천대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고 교수로 복직했다. 또 1년도 되지 않은 2006년 12월에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컴백’도 했다.

이는 당시 공저자였던 서울대·한양대 교수들 전원이 학교 당국으로부터 연구부정행위나 연구비 관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징계와 권고사직 등 제재를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 본부장은 또 2001∼2004년 황 전 교수로부터 전공과 무관한 연구과제 2개를 위탁받으면서 정부지원금 2억5천만 원을 받았으며, 2006년 초 검찰 수사에서는 최종 연구개발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고 일부 연구비를 절차상 부적절하게 집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만 사법처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이런 행적 때문에 박 본부장은 7일 임명 발표 직후부터 과학기술인단체·시민단체들과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당으로부터 거센 사퇴 압력을 받아 왔다.

박 본부장은 황우석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다가, 본부장에 임명된 지 사흘만인 10일에야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을 총괄한 사람으로서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면서 이 자리를 빌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11년만에 사과했으나, 과학기술계의 냉엄한 판단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박 본부장 사퇴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박 본부장 임명 후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운다’는 성명을 냈던 민주노총 공공연구노조는 “문재인 정부가 연구 현장과 과학기술계, 시민사회의 의견을 따라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라며 “우리는 여러 단체들과 함께 과학공동체를 바로 세우고 과학기술체제를 개혁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임명 반대 서명을 벌인 과학기술인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윤태웅 대표(고려대 교수)는 “실수를 인정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 정부도 실력을 쌓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울대 교수 서명운동을 벌여 온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 안타깝지만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평가하며 “과학에 이념이 있는게 아닌데 전문성, 상식이 통하는 분으로 모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과기계 전문가가 별로 없어보이는데 인재풀을 좀 넓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의 낙마로, 과기혁신본부를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정책 집행의 컨트롤타워로 삼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 실현은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령 개정으로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차관급 본부장을 둔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하는 것까지는 됐으나, 국가 R&D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 조정 권한과 함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역할까지 부여한다는 구상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국가 R&D 사업 예산 권한은 현재 기획재정부의 업무로 되어 있으며, 이를 과기혁신본부가 맡으려면 과학기술기본법 등 추가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과기계와 관가에서는 기재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등 연구개발 분야 예산 권한을 과기혁신본부에 쉽게 넘겨주지는 않으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추후 정부내 논의과정에서 지리한 공방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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