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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가로 기억하겠습니다”

“여성인권 활동가로 기억하겠습니다”

입력 2017-07-25 22:48
업데이트 2017-07-2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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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자 할머니 영결식·노제

각계 100여명 마지막 길 배웅… 위안부 피해 생존자 37명 남아

지난 23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89) 할머니의 영결식이 25일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과 광주시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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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노제에서 이용수(오른쪽 두 번째) 할머니와 박옥선(오른쪽) 할머니가 헌화한 뒤 영정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노제에서 이용수(오른쪽 두 번째) 할머니와 박옥선(오른쪽) 할머니가 헌화한 뒤 영정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결식은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식 발인제에 이어 고인이 머문 나눔의 집으로 이동해 노제를 지내는 순서로 진행됐다.

노제에는 유족과 지인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소병훈·임종성 의원, 강득구 경기도 연정부지사, 박종문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학생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나눔의 집 원행 스님은 추모사에서 “올바른 역사와 인권을 알리기 위해 당당하고 용감하게 증언을 한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인권 활동가로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노제에 참석한 이용수(90) 할머니는 “군자씨,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하고 울어야 합니까”라면서 “너무 억울하고 분하지만 이제 편안하게 웃으면서 잘 가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추모사가 끝난 뒤 유가족을 시작으로 원행 스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다. 추모객 중 일부는 흐느끼기도 했다. 1시간여 이어진 이날 노제에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할머니 9명 중 이용수·박옥선(94) 할머니만 자리를 함께 했다. 다른 할머니들은 거동이 불편해 생활관 안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고인의 유해는 퇴촌성당에서 마지막 미사 후 서울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나눔의 집 법당에 안치된다.

김 할머니는 1998년부터 20년 가까이 나눔의 집에서 생활했다.

고인은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1억원, 퇴촌성당에 1억 5000만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등 생전에 모은 돈 2억 6000여만원을 다 기부하고 떠났다.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2017-07-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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