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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잃어가는 과정… 남겨진 이에 말 걸었죠”

“삶은 잃어가는 과정… 남겨진 이에 말 걸었죠”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6-30 17:24
업데이트 2017-06-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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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소설집 펴낸 김애란 작가… 인간에 대한 질문·의심과 희망 담아

바깥은 여름/김애란 지음/문학동네/272쪽/1만 3000원

김애란(37)은 늘 한국 문단의 ‘현상’이었고 ‘가능성’이었다. 엉뚱하면서도 의표를 찔렀고, 싱그러우면서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속내로 독자들을 웃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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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머물며 공간에 관한 새 장편을 집필할 계획이라는 김애란 작가는 “과거에는 한 세대(청년세대)에 고정된 이야기에 집중했었다면, 좌표가 옮겨진 자리에서는 질문이 많고 여러 겹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오는 8월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머물며 공간에 관한 새 장편을 집필할 계획이라는 김애란 작가는 “과거에는 한 세대(청년세대)에 고정된 이야기에 집중했었다면, 좌표가 옮겨진 자리에서는 질문이 많고 여러 겹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그가 올여름 소설 시장에 돌아왔다. 인간에 대한 겹겹의 추문과 질문, 의심과 희망을 품은 이야기를 들고. 5년 만에 펴낸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이다.

바깥은 여름이지만, 안쪽에선 추위가 그득하다. 7편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짚이는 감각은 상실의 통증이기 때문이다. 겨우 중산층의 끄트머리에 안착했다 안도하는 순간, 후진하던 어린이집 차에 아이를 잃고(입동), 두 사람만의 냄새로 채워 가던 공간에서 남편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허물처럼 무너진다(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소수 언어의 유일한 화자들은 말과 함께 영혼을 잃고(침묵의 미래),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모르는 존재가 되어 있다(가리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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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들의 내면, 이들의 불행을 탐닉하거나 외면하는 세상의 간교함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풍경으로 그려낸다. 2012년에 쓰인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를 제외하고는 6편이 모두 2014년 봄 이후부터 쓰인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짐작이 될 법하다.

굳이 세월호 참사라고 적시하진 않았지만 작가는 “저도 사회의 공기를 마시며 사니까요. 많은 사람이 가치관, 지향점을 크게 휘청거렸던 경험이죠”라며 에둘러 암시했다. 누가 될까 저어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든 성인이든 삶은 늘 무언가 잃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건강이든 신념이든 관계이든요. 제가 훌륭한 사람이어서 뭔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겠다는 게 아니라, 제가 제 속에서 절실한 말을 찾아낸 것 같아요.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266쪽)하는 말이요. 때문에 당장 서둘러 (상실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어떤 자리인지 더듬어 보고 부재하는 사람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게 됐네요.”

‘김애란 소설’의 전매특허였던 발랄한 상상력, 위트 있는 어법이 거둬진 것도 그 때문이다.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에선 주인공이 세상을 뜨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농담하고 부모님도 웃겨 드리고 그랬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당사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잃은 뒤) 남겨진 사람들 이야기를 쓰다 보니 유머를 더하는 게 어려웠어요.”

소설의 변화는 작가 자신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스물둘에 소설가로 데뷔했던 그는 어느덧 등단 15년차 작가가 됐다.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청춘들의 삶을 대변해온 그의 관심도 ‘작고 흔한 속됨, 얼룩이 있는 인간’으로 옮겨갔다.

“20대 때는 내가 누군지 궁금하고 렌즈를 내 안쪽에 집중해 탐구하는 글들을 많이 썼었죠.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관계가 더 눈에 보였어요.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는 내가 가진 색을 지키면서 형식, 내용, 세계관에 차이를 주고 싶어 고민도 많고 헤맨 시간이 길었어요. 하지만 20대에서 30대로 중간 세대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아요. 고개를 앞뒤로 돌릴 수 있는 폭이 생겼고 다른 몸을 가지면서 생기는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들이 있으니까요. 20대는 그때의 몸으로 쓸 수 있는 글이 있었고, 미덕과 한계가 있었다면, 앞으로 쓰는 글들은 그대로 미덕과 한계가 있겠죠.”

김애란의 쿨한 유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이번 소설집이 낯설 수도 있겠다. 그런 이들에게 작가는 싱긋, 웃으며 귀띔했다. “유머는 몸에 기억된 감각이기 때문에 휘발된 게 아니라 잠재돼 있다”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7-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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