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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40년 만에 신·구교 공동 번역… “공동선 위해 노력”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40년 만에 신·구교 공동 번역… “공동선 위해 노력”

김성호 기자
입력 2017-06-28 18:06
업데이트 2017-06-2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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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허무는 사람들<9>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 직제協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친다’며 화해를 이루라고 갈파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말씀은 화해가 피조물 전체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지난 1월 서울 성동구 옥수동 루터교회에서 열린 ‘한국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에서 주한 교황청대사관 오스발도 파딜랴 대사가 교황청을 대신해 전한 인사말이다. 그 인사말은 화해와 사랑을 강조하지만 그 바탕에 엄연한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두고 있어 씁쓸하다. 실제로 이 땅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들어온 지 각각 230년, 130여년이 지났지만 신·구교 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한국신앙직제)는 그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로 나아가자는 운동을 이끄는 독특한 만남이다.
지난 1월 서울 성동구 옥수동 루터교회에서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가 주최한 ‘한국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에서 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운데)를 비롯한 신·구교 대표들이 천주교의 강복(降福) 의식을 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공
지난 1월 서울 성동구 옥수동 루터교회에서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가 주최한 ‘한국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에서 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운데)를 비롯한 신·구교 대표들이 천주교의 강복(降福) 의식을 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공
2014년 5월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창립한 한국신앙직제를 이끄는 두 축은 천주교 주교회의와 개신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이다. 여기에 NCCK에 소속된 9개 교단이 함께하고 있다. 그 교단에는 성공회와 정교회, 루터회가 들어 있어 사실상 신·구교 교파를 망라하는 셈이다. 신·구교 양측에서 엄선된 신학자들로 구성된 신학위원회가 핵심이다. 창립 때부터 이 신학위원회를 중심으로 신·구교 일치기도회(1월)를 비롯해 일치포럼(5월), 일치 피정(7월), 일치아카데미(9월부터 10주간), 신학생 교류모임(10월), 성탄음악회(성탄절 직전)를 어김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3년에 한 번씩 신·구교 교단 대표와 신학자들이 함께 양측 성지를 도는 일치순례도 진행한다.

한국신앙직제가 활동한 지는 3년 남짓의 짧은 기간. 하지만 이 땅에서 신·구교 간 화해의 몸짓이 시작된 건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오른다. 1965년 한국천주교와 대한성공회가 ‘일치 기도주간’ 중 서로 방문해 일치기도회를 연 게 시초다. ‘일치 기도주간’(1월18~25일)이란 갈라진 그리스도교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는 주간. 천주교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가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고한 뒤 시작됐다.

1968년 천주교 주교회의와 NCCK가 명동성당과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일치 기도주간’을 함께 지낸 건 한국 기독교사에 새 장을 연 것으로 기록된다. 1986년 정교회와 루터회가 동참하고 여러 교단이 가세하면서 일치 포럼, 신학 대화, 신학생 교류 활동을 펼쳤으며 그 결과물인 ‘공동번역성서’(1997년) 출판은 괄목할 만한 결실이다. 이후 주교회의와 NCCK는 공식적인 대화 운동을 전개했고 2009년에는 ‘네 손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라’는 주제로 일치 기도주간 자료집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양측이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을 조직하기로 합의해 2014년 창립한 게 한국신앙직제이다. 종전 별도 기구 없이 사안에 따라 임의 조직 형태로 전개되던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을 상시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다. 각 교단 대표로 구성된 공동대표단이 조직돼 있으며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NCCK 총무인 김영주 목사가 공동의장으로 모임을 주재한다. 활동도 종전 화해와 일치에 대한 관심 증대 차원의 소극적인 노력과는 달리 신학적 대화를 포함한 본격적 일치 활동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공동의 사업은 가깝게 사귀기, 함께 공부하기, 함께 행동하기, 함께 기도하기 등 네 개의 지침으로 요약된다. 창립 선언문은 그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격동의 역사 한가운데서 만나 해방과 자유,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의 자리에서 협력해왔다. 이 땅에 복음이 전래된 이래 개신교와 정교회, 천주교가 공식 기구를 통해 일치의 증진과 선교 협력으로 나아가는 단초를 마련한 것은 그리스도교 역사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 화해와 일치를 위한 공동 운동의 핵심은 신학위원회이다. 신·구교 양측에서 선발된 신학자들의 모임인 신학위원회는 실제로 기초적인 신학 대화를 주선하고 평신도들을 위한 일치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제작한다. 그런가 하면 해외 각국의 일치운동 성과물을 공동번역해 책으로 발간하며 일치기도회 자료집을 내고 일치 포럼의 주제도 정한다. 지난달 신학위원회가 펴낸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1977년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성서’ 발간 이후 40년 만의 첫 공동작업이란 점에서 교황청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황청과 루터교세계연맹이 신·구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이다.

“일치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학적 성찰과 일치를 넘어 각 교회가 함께 세상 속에서 공동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라는 한국신앙직제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우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신·구교 신학자들의 공동 논문집을 발간할 예정이며 가톨릭과 개신교가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용어들에 관한 사전을 만드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Kimus@seoul.co.kr

2017-06-29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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