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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의 속옷감, 수천년 뒤 지폐로 쓰이다

투탕카멘의 속옷감, 수천년 뒤 지폐로 쓰이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6-23 22:42
업데이트 2017-06-2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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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그레그 제너 지음/서정아 옮김/와이즈베리/480쪽/1만 6000원

최근 TV에선 ‘아재들의 수다’가 화제다. 나영석 PD가 새로 선보인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그 중심에 있다.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등 각자의 분야에서 잡학박사로 이름난 이들은 키워드 하나만 입에 올리면 줄줄이 이어지는 수다로 역사, 철학, 과학, 예술 등 전방위를 아우르는 지식과 입담을 자랑한다. 프로그램 제목에서 보듯 “알아두면 쓸데없다”고 미리 연막을 쳐놨지만 시청자들은 외려 그 ‘쓸데없음’에 빠져든다. ‘장어는 정력에 좋은가’,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지금도 느낄 수 있는가’, ‘한국인은 왜 커피를 많이 마시나’ 등 이들의 수다는 일상과 긴밀히 맞닿아 있는 의문과 탐구이다. 때문에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과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 지구상에 머물다 간 1070억여명의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가며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일궈 왔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체험한 일상에는 우리 증조부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도 있었으나 석기 시대 조상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다 해도 우리 일상 대부분을 낯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와이즈베리 제공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 지구상에 머물다 간 1070억여명의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가며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일궈 왔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체험한 일상에는 우리 증조부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도 있었으나 석기 시대 조상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다 해도 우리 일상 대부분을 낯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와이즈베리 제공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 지구상에 머물다 간 1070억여명의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가며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일궈 왔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체험한 일상에는 우리 증조부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도 있었으나 석기 시대 조상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다 해도 우리 일상 대부분을 낯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와이즈베리 제공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 지구상에 머물다 간 1070억여명의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가며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일궈 왔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체험한 일상에는 우리 증조부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도 있었으나 석기 시대 조상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다 해도 우리 일상 대부분을 낯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와이즈베리 제공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그런 측면에서 ‘알쓸신잡 유의 책’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영국의 대중 역사평론가로 TV 역사 다큐멘터리, 드라마에 역사 지식을 불어넣어 온 저자는 거대한 역사에서 하찮게 여겨 온 개인의 일상에 숨겨진 기상천외한 뒷얘기에 주목한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싸고 자는, 인간의 지극히 평범한 일과가 어떻게 지난 100만 년의 역사와 긴밀히 엮여 있는지 흥미진진하게 탐구하는 책의 질문은 이렇게 압축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살게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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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느 토요일 아침 눈을 떠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간대별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되풀이하는 행위와 그때마다 사용하는 물건, 먹는 음식들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간다.

왜 인간은 시간을 절대적인 지령으로 받들며 움직이게 됐을까. 밤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기신기신 일어나는 우리의 모습은 25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초의 자명종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아카데미아 학생들이 늦잠을 자느라 오전 강의 시간 지각이 속출하자 자명종의 존재가 절실했을까. 확증은 없지만 고대의 학생들과 요즘 학생들이 꼭 겹쳐 보이는 풍경이다.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시신을 싸고 있던 수의, 아마포는 청동기 시대였던 당시 ‘모든 이들의 옷감’이었다. 1922년 발견된 투탕카멘의 묘에서는 멋진 황금과 장신구, 석관 등이 발굴됐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또 하나 있었다. 보이스카우트 캠프를 떠나는 소년처럼 무덤에 145벌의 아마포 속옷도 같이 묻혔던 것. 아마포의 ‘위대한 쓰임’은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침대나 식탁에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지갑 속에서도 지폐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저자 특유의 ‘뼈 있는 익살’은 500쪽에 가까운 벽돌책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중상주의가 싹튼 13세기 유럽 여러 도시에서 종탑 꼭대기에 설치된 대형 기계식 시계를 두고 하는 말이 한 예다.

‘(도시 종탑의 대형 시계는) 쉴 새 없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현재 시각을 알렸다. 현찰을 긁어모을 수 있는 영업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으니 당장 거리로 나가라고 외쳐대는 셈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도널드 트럼프와 하는 짓이 비슷했다. 머리 모양이 우스꽝스럽지 않다는 점만이 달랐다. 시계탑의 감시 아래 봉건주의는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갑자기 시간이 돈이 되었다.’(35쪽)

남녀가 내외도 하지 않고 긴 벤치에 앉아 함께 대변을 봤던 로마의 공중변소 포리카, 자위 행위에 대한 혐오로 탄생했다는 시리얼 등 지금 들으면 아연한 일상의 역사들도 촘촘히 채워져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전에 살다 간 사람과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닮은꼴로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경이로움이 엄습한다. 큰 간극이 있다고 여긴 선조의 삶과 현대인의 삶 사이에 교집합을 발견하도록 하는 게 저자가 책을 쓴 의도이기도 하다.

“석기시대 동굴 거주민과 우리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인류가 태초 이래로 항상 해 오던 것과 매우 비슷한 행위를 날마다 되풀이한다. 근본적으로 이 책은 당신과 나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다 보니 그저 배경이 과거가 되었을 뿐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6-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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