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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실패한 조조 독살… 모진 고문에 길평이 자백했다면 효력 있을까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실패한 조조 독살… 모진 고문에 길평이 자백했다면 효력 있을까

입력 2017-05-25 17:42
업데이트 2017-05-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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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고문과 자백 배제의 법칙

조조를 그대로 두면 결국 한나라가 망할 것은 명약관화. 황제는 조조를 없애기 위해 믿을 만한 사람을 찾다 동승에게 밀지를 내린다. 황제의 뜻에 공감한 동승은 혈판장(血判狀)을 만들어 동지를 모은다. 여기에는 조조의 주치의 길평도 참여한다.

어느 날 조조가 두통약을 지어 달라고 하자 길평은 독을 넣은 탕약을 건넨다. 하지만 조조는 이미 동승의 하인 경동의 밀고로 모든 상황을 꿰고 있다. 결국 동승과 길평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조조는 자백을 받아 동참자를 알아내기 위해 길평에게 온갖 고문을 자행한다. 하지만 길평은 끝내 입을 열지 않는데….

※ 원저 : 요코야마 미쓰테루(橫山光輝)

※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
일러스트 최선아 민화작가
일러스트 최선아 민화작가
조조를 독살하려던 길평의 시도는 아무런 소득 없이 암살 계획만을 노출시킨 채 발각되고 만다. 조조는 동승의 집에서 황제의 밀서와 혈판장을 찾아낸다. 그러곤 혈판장에 서명한 신하와 일족을 잡아들여 700여명이나 참수한다.

길평은 조조를 독살하려다 실패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며 부인한다. 그러자 조조는 길평으로부터 자백을 받기 위해 혹독한 고문을 한다. 조조가 이처럼 고문을 해서라도 길평에게 자백을 받으려는 이유는 뭘까. 만약 고문에 의해 길평이 자백을 했다면 그것이 과연 죄를 인정한 것으로서 효과가 있을까.

●자백은 ‘증거의 왕’?

조조는 실제로 길평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는지 확신할 수 있을까. 탕약 안에 독을 넣은 사람이 길평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경동이 동승과 길평을 미워해 조작한 일일 수도 있다.

동승의 집에서 찾아낸 혈판장에 기재된 장수들이 스스로 서명했는지도 알 수 없다. 누군가 동승을 모함하려고 거짓으로 혈판장을 작성해 일부러 동승의 집에 숨겨 놓았을 수도 있다. 일부 서명이 위조됐을 수도 있다. 이처럼 모든 증거는 그 자체만으로 완벽하게 범행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다른 증거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돼야만 비로소 범행을 증명할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을 막는 길이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객관적인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긴 쉽지 않다. 사또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추궁하지만,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여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평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면 어떨까. 다른 어떤 증거보다 조조의 귀를 달콤하게 간지럽힌다. 혹시 모를 오판(誤判)으로 인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수도 있다. 조조로 하여금 ‘제가 다 인정했는데 뭐’라고 자위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백은 오랫동안 ‘증거의 왕’으로 군림해 왔다. 자백만큼 명백한 증거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백이 증거의 왕이었던 만큼 자백을 받기 위한 수단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조조처럼 무시무시한 고문을 가하기도 하고, 때로는 달콤하게 회유하기도 했다. ‘자백하지 않으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협박이 가해지기도 했다. 자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문, 회유, 협박과 같은 수단이 필요하다고 합리화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고문·회유 의한 자백, 진실일까

매를 맞던 길평이 결국 자백을 했다고 치자. 이처럼 고문, 회유, 협박에 의한 자백이 진실일까. 그런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자백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허위로 자백한 것이라는 의심이 훨씬 강하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제12조 제2항에서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와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권리는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고문을 하는 주된 목적은 자백이라는 진술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진술 자체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면 저절로 자백을 강요하지 않게 된다.

헌법의 정신을 이어받아 형사소송법에서도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있다.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진술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또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유죄로 추정되지도 않고, 형량을 정할 때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

●혈판장은 증거로 쓸 수 있을까

길평이 주리를 틀고 곤장을 때리는 조조의 고문에 못 이겨 암살 계획을 자백했다고 치자. 효과가 있을까. 조조의 이런 노력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신의에 반해 상대를 착오에 빠지게 하는 모든 행위), 기타의 방법에 의해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에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헌법 제12조 제7항). 결국 길평의 자백은 길평과 동조자들의 암살 계획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한 걸음 더 나가 보자. 길평이 “동승의 집에 가면 혈판장이 있다. 거기에 모든 계획이 다 있다”고 자백했다. 그래서 조조가 동승의 집에 가서 혈판장을 찾았다면 그것을 증거로 쓸 수 있을까. 혈판장은 자백과는 다른 증거이므로 이것을 증거로 쓸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혈판장도 증거로 쓸 수 없다. 길평의 자백을 얻는 과정에 고문이라는 위법이 개입됐기 때문에 그로부터 얻은 증거인 혈판장도 위법으로 오염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毒)이 있는 나무에서는 독이 들어 있는 열매가 열린다.

문제는 길평을 처벌할 수 없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역으로 조조 자신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 또는 기타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받기 때문이다(형법 제125조). 나아가 위와 같은 행위로 상해에 이르게 되면 1년 이상의 유기징역, 사망에 이르게 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받는다(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 2). 특별한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강하게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 의해 고문을 금지하는 헌법 이념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반성 담은 자백, 죄를 덜 수도

진술을 거부하는 것과 자신의 범행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그것이 형량을 정하는 데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반성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자백을 통해 책임을 지는 것이 때로는 죄를 저지른 사람의 책임감을 줄이는 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형법은 범죄를 저지른 후 자수를 한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52조). 또 다른 증거에 의해 범행이 충분히 입증됐는데도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것으로 보여 구속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 제2호).

양중진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2017-05-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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