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시대를 만나다

입력 : 2017-05-18 22:38 ㅣ 수정 : 2017-05-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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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박물관 ‘빼앗긴 창작의 자유展’… 심의에 억눌렸던 만화사 조명

1980년대 최고 인기만화 ‘아기공룡둘리’가 사전 심의에 걸린 적이 있다. 둘리가 어른 고길동에게 반말을 한다는 게 이유였다. 남북 분단 현실을 다룬 허영만의 ‘오! 한강’은 인공기가 등장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이 정도는 약과다. 김종래의 ‘삼팔선’은 국군의 후퇴 장면을 그려 명예를 훼손했다며 빨간 색연필이 그어졌다. 길창덕의 명랑 만화 ‘0점 동자’는 제목이 저속하다며 연재가 조기 종료됐다. 이상무의 ‘비둘기 합창’은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모여 자는 장면이 지적당했고, 이현세는 우리 고대 신화를 다룬 필생의 역작 ‘천국의 신화’를 그리다가 음란물로 기소당해 6년간 법정에 서서 고통을 받으며 창작 의지가 꺾이기도 했다.

허영만의 ‘오! 한강’

▲ 허영만의 ‘오! 한강’

길창덕의 명랑 만화 ‘0점 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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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창덕의 명랑 만화 ‘0점 동자’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우리 문화계 전반이 엄혹한 시간을 건너오며 창작의 자유를 옥죄는 검열을 겪었지만 특히 만화가 가장 큰 피해자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창작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요즘, 한국 만화 검열의 역사를 돌아보는 기획전 ‘빼앗긴 창작의 자유’가 18일부터 7월 9일까지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다. 현재 만화계는 일부 웹툰의 선정성, 폭력성 논란과 관련해 창작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 새로운 화두에 휩싸여 있는 터라 더 주목되는 전시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억압에도 시사 만화를 중심으로 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해학을 담아내던 우리 만화는 해방 뒤 활짝 만개했지만 19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다시 부침을 겪어야 했다. 심의필 도장을 받아야 작품을 낼 수 있는 사전 심의(검열)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만화계 자율 심의로 출발했으나 1967년 만화가 사회 6대 악으로 규정되며 정부 산하 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생겨났고, 훗날 도서잡지윤리위로 합쳐지며 창작자들을 짓눌렀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만화책 화형식도 열리곤 했다. 사전 심의는 1990년대 후반 없어졌지만 청소년보호법이 생겨나며 만화가들에게 자기 검열의 굴레를 덧씌웠다.

기획전은 검열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살펴보며 당대의 사회 정치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검열의 시간’과 시사 만화와 대중 만화의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검열 사례를 만날 수 있는 ‘빼앗긴 창작의 자유’의 두 섹션으로 구성된다. 이두호, 허영만, 이희재, 장태산, 황미나 등 우리 만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검열의 추억을 털어놓는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2017-05-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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