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눈물’ 21년 꿈의 도전 ‘기쁨의 눈물’로 마침표 찍는다

입력 : 2017-05-03 23:44 ㅣ 수정 : 2017-05-04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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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화려한 피날레를 위하여
21년 전 ‘올림픽 유치’ 꿈을 밝혔던 평창은 성공적인 대회 개최로 화려한 마침표를 찍을 채비에 바쁘다.
1996년 최각규 초대 민선 강원도지사는 낙후한 지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방안이라고 여겼다. 곧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유치 논의는 물밑으로 가라앉았지만 ‘평창의 꿈’은 움트기 시작했다. 민선 2기 김진선 전 지사는 1999년 동계아시안게임을 치르며 자신감을 얻었고 2000년 10월 ‘2010 동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했다. 북한 평양과 헷갈리기 일쑤일 만큼 국제무대에 낯설던 평창은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1차 투표에서 과반수에 3표 모자란 51표를 얻고도 2차 투표에선 53-56, 3표 차로 캐나다 밴쿠버에 밀려 눈물을 뿌렸다. 평창은 2014년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7년 7월 과테말라 IOC총회 1차 투표에서 36표로 1위를 차지했지만 2차 투표에서 47-51로 소치에 무릎을 꿇었다. 2007년 9월 김 전 지사는 2018년 대회 유치를 내걸었다. 10년 전만 해도 감자밭이던 곳을 스키점프,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으로 일구자 IOC 평가단도 놀라움을 드러냈다. 김 전 지사는 세 차례 유치 과정에서 지구 22바퀴 거리(87만㎞)를 뛰었고, ‘피겨 여왕’ 김연아도 감성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호소했다. 결국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총회에서 63표를 받아 독일 뮌헨(25표)을 눌렀다.

조직위는 지난해 말 영하 8도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날씨 속에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신문사 앞 서울마당에서 토크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국민 속으로’ 파고들었다. 최근엔 국립중앙박물관과 어린이박물관, 국회, 정부세종청사,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공공시설 5곳에서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엠블럼을 활용한 라이선스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또 공항, 철도역사 등 다중 이용시설과 총괄사업권자인 롯데쇼핑의 채널을 중심으로 유통망과 판매처를 늘릴 참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2017-05-0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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