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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내다 파는 할매, 그 쓸쓸한 복수극

살림 내다 파는 할매, 그 쓸쓸한 복수극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7-04-16 17:40
업데이트 2017-04-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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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리를 이고…’ 극작가 윤미현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제목만큼 재기발랄하다. 평범하지만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맛깔나는 대사는 시종일관 관객을 웃겼다가 다시 울린다. 막이 내릴 때쯤 절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펄떡이는 작품을 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의 작가 윤미현은 서울에 있는 재래시장은 거의 다 가봤을 만큼 열정적인 관찰자다. “꽈리고추 한 박스에 담긴 고추 하나하나를 따져 고르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할머니를 직접 보고 만든 사건과 상상으로 그린 사건은 완전히 달라요. 시장은 입체감 있는 인물 군상을 접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죠.”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의 작가 윤미현은 서울에 있는 재래시장은 거의 다 가봤을 만큼 열정적인 관찰자다. “꽈리고추 한 박스에 담긴 고추 하나하나를 따져 고르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할머니를 직접 보고 만든 사건과 상상으로 그린 사건은 완전히 달라요. 시장은 입체감 있는 인물 군상을 접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죠.”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홀대하는 자식에 맞서는 노인 이야기

시를 전공하고 소설로 등단한 극작가 윤미현(37)의 이번 연극은 국립극단 ‘젊은 극작가전’의 첫 작품으로 지난해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 ‘작가의 방’을 통해 탄생했다. 2012년 데뷔한 윤 작가는 그간 풍자와 역설의 언어로 현시대의 문제점을 파고드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작품은 광주리를 이고 장사를 하면서 힘들게 자식들을 키운 ‘광주리 할머니’가 자신을 홀대하는 자식들에게 나름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살림살이를 내다 팔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작품의 시작은 ‘내가 노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작가의 고민이었다.

“대학 시절 글 쓰는 사람으로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늙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했죠. 젊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터라 빨리 늙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노인들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탐구가 시작됐다. 대학 시절 방학이 되면 그녀는 장충단공원, 파고다공원 등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출근하듯 방문했다.

●소외받는 노인들의 정서·현실 다뤄

“파고다공원에서 빨간색 대야에다가 여러 가지 물건을 담아 이고 온 한 할머니가 보자기를 펴놓고 본인 저고리까지 파시더라고요. 제가 곁에서 지켜보니 절대 안 팔려요. 문득 그 할머니의 삶이 궁금해져서 나름대로 추적하고 상상하게 됐죠.”

이야기는 단순히 소외받는 노인들의 쓸쓸한 단면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대학원을 중도에 포기하고 취업을 못 한 채 방에만 틀어박혀 사는 ‘미미’와 퇴직 후 집에서 매일 막장 드라마만 보는 ‘미미 아빠’는 각각 오늘날 30대와 50대가 처한 쓸쓸한 현실을 대변한다. 적나라한 현실이 무대 위에 그대로 드러나지만 극이 마냥 우울하지 않은 건 윤 작가 특유의 말맛이 묻어나는 대사 덕분이다. “현실이 더 막장이지? 그니깐 드라마는 얼마나 부드러운 양송이스프 같은 거야”, “이 생활은 총살에 가까운 탄압인 거지. 이 판국에 총 한 자루씩 갖고 싶은 노인이 한두 명이 아닐 거다”와 같은 대사는 함축적인 언어로 현실을 간명하게 전달한다.

●“언어 템포 살린 음악적 희곡 쓰고 싶어”

“단어 하나도 그냥 쓰면 안 돼요. 작가가 쓰는 건 글말이지만 관객들에게는 소리로 전달되잖아요. 시를 오래 쓰면서 생긴 가치관이기도 한데 언어의 템포를 살리지 못한 작품은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언어의 리듬감을 통해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한 곡의 음악과 같은 희곡을 쓰고 싶습니다.”

공연은 오는 23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 3만원. 1644-2003.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04-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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