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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에 바란다-교육 7대 이슈 점검] 돈의 노예 된 대학들… 자구책은 뒷전, 1조 따내기 혈안

[대선 후보들에 바란다-교육 7대 이슈 점검] 돈의 노예 된 대학들… 자구책은 뒷전, 1조 따내기 혈안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7-03-30 17:34
업데이트 2017-03-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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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대학재정지원사업

“사업계획서를 쓰다 보면 마치 커다란 ‘괴물’을 마주하는 느낌이 듭니다. 대학이 돈의 노예가 됐다는 생각도 들죠.”

수도권의 한 4년제 대학 교수가 대학재정지원사업을 가리켜 한 이야기다. 그는 “지금 대학교수들 모두 재정지원사업만 쳐다보고 있다”면서 “대학이 재정지원사업 때문에 교육부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많은데, 자생력이 떨어지는 대학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대학은 지나치게 많고, 학생 수는 급격히 줄어드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립대 재단 중 법으로 정한 전입금(대학에 지원하는 경비)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 살아남으려면 대학에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씩 돌아가는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돼야 한다. 자연히 교육부 앞에 줄을 설 수밖에 없다. 해마다 늘어나는 재정지원사업이 대학 경쟁력을 키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학을 길들이는 수단이 됐다는 비판도 거세다. 대학의 미래를 위해 대선 주자들이 재정지원사업의 올바른 방향과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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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의 교육, 연구, 산학협력 역량 강화와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부가 연 단위로 지원하는 사업들을 통칭한다. 교육부가 사업계획을 수립해 공고하고, 사업 운영과 관리를 한국연구재단 등 수탁기관이 위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수탁기관이 대학과 사업단에서 사업계획서 등 신청서를 받아 이에 맞는 평가위원을 구성하고 평가를 진행한다. 평가는 요건 심사, 서면평가, 대면평가, 최종 심의 단계를 거쳐 사업 특성에 따라 유형이나 권역 등으로 분리해 순위를 매긴다. 선정된 대학은 순위에 따라 지원금을 받는다.

교육부는 대학재정지원사업 전체 규모를 올해 1조 5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 18개 부처에서 관여하는 사업까지 합치면 2조원 이상으로 셈하기도 한다. 다만 국립대나 전문대학만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뺀 이른바 ‘주요 사업’은 모두 9개로, 그 규모가 1조 1945억원에 달한다. 2015년 4개 사업, 6301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8개, 9207억원으로 늘었고 올해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평생교육단과대학 지원사업을 비롯해 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지원사업(PRIME),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CORE), 여성공학인재 양성사업(WE-UP) 등 수백억~수천억원 단위의 굵직한 사업들이 신설됐다. 여기에 올해에는 무려 3271억원 규모의 사회맞춤형 산학협력선도대학 육성사업(LINC+)도 생겼다.

●주요 9개 사업 규모 1조원 넘어

대학재정지원사업을 벌여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사립대학들의 재정구조를 살펴보면 사실상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한 과열 양상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립대학을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은 관련법령에 따라 교지, 교사,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을 확보하고 전입금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법적으로 부담해야 할 전입금 비율이 100%에 못 미치는 사립대는 152곳 가운데 113교, 전체 대학의 74%에 이른다. 사립대 총수입에서 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4.7%에 불과했다.

반면 등록금 의존율은 지나치게 높았다. 2014년 기준 사립대 152곳의 수입 총액은 모두 18조 8870억원이었는데, 이 중 등록금 수입은 10조 3354억원으로 수입 대비 54.7%에 이르렀다. 등록금에서 남은 돈은 대부분 적립금으로 들어간다. 연구소가 145개 법인 적립금 현황을 살펴보니 2010년 7조 6677억원이었던 적립금 총액은 2014년 8조 1872억원으로 5195억원이 증가했다. 조사 대상 대학 중 절반이 넘는 80개 대학(54.1%)에서 적립금이 늘어난 것이다. 재단이 보유한 기본재산 대부분은 토지를 비롯한 저수익 자산이었다. 저금리 탓에 재산을 운용해 봐야 수익률이 기준치(연 3.5%)를 밑돈다. 사립대가 학교 운영경비를 등록금이나 국고보조금에 의존하고 제대로 된 자체 수익은 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전입금 역시 쥐꼬리에 불과하다. 대학이 교육부가 내놓는 1조원 규모 재정 지원에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으로선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면 대학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몇 년째 등록금을 인하 또는 동결하고 있다. 또 대학 구조조정 평가에 따라 사업 참여를 배제하면서 대학들은 제 살을 깎는 구조조정에도 기꺼이 동참한다. 박거용(상명대 교수) 대학연구소장은 “교육부의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각종 사업에서 배제당하기 때문에 사업 자체가 교육부의 큰 무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돈줄을 쥔 교육부가 자연스레 사업을 쥐고 흔드는 일도 발생한다. 감사원이 지난 24일 발표한 이화여대 감사에서도 이런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앞서 이화여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해 학사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각종 정부 대학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의심을 받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프라임사업은 애초 공고된 기본계획에 본·분교 동시 신청이 가능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교육부가 지원 대학 선정 과정에 개입해 이를 뒤집었다. 지난해 사업 공고 이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 교육부에 상명대 본교와 분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견을 전달해 상명대 본교는 탈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화여대가 지난해 55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평생교육단과대학 지원사업도 대학의 참여가 저조하자 청와대가 사업을 재설계·재공고하도록 교육부에 요청했고, 교육부는 이화여대를 비롯한 7개 대학에 연락해 의견을 수렴하고 나서 조건을 완화해 줬다. 애초 조건에 맞지 않아 사업에 지원하지 않았던 이화여대 등 4개 학교가 추가로 선정됐다.

이 감사로 청와대와 비선 실세, 학교 간 ‘모종의 커넥션’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대학재정지원사업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평가가 부실하게 진행되고, 교비 횡령으로 수사를 받는 학교를 지원 대상으로 뽑는 등 문제점이 확실히 드러났다.

대학가에서는 이를 두고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른 사업 평가에서도 이번처럼 교육부가 개입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느냐는 의심도 나온다.

교육부의 이와 같은 과도한 개입에 따라 대학 전체의 지향점도 흔들린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에서는 재정지원사업 평가지표에 취업률과 재학생충원율 비중을 높게 뒀다. 취업률을 올리고, 기업들에 맞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본래 ‘교육’과 ‘연구’를 존립 목적으로 하는 4년제 일반대학의 지향점이 ‘취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4년제 대학의 전문대학화를 부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교육부 과도한 개입으로 대학 지향점도 흔들려

이런 비난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월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내고 정량평가 외에 정성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정량평가에서 취업률과 재학생충원율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희 대구대 교수는 “대학 정원 감축이나 구조개혁 실적 등 재정지원사업의 목적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정책 유도지표로 가산점을 주는 행태가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이어지는 비판에 교육부는 지난해 7월 신설·재편되는 정부 대학재정지원사업 선정을 ‘톱다운’에서 ‘보텀업’ 방식으로 전면 개편하는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방향’(시안)을 발표했다. 주요 사업 가운데 6개 사업이 2018년 마무리되면서 2019년부터는 사업이 ▲연구·교육(대학특성화) ▲산학협력 ▲학부교육으로 단순화된다. 정량평가는 축소하고 지표도 3분의1 수준으로 간소화한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런 방향에 대해 “교육부가 대학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많이 고민하고 맞춰 줬다는 게 대학가의 평가”라며 “차기 정부에서 규모를 좀더 늘리고, 교육부의 통제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 교수는 이와 관련 “참여정부까지는 기본 요건을 갖춘 대학에 일정 수준의 재정을 지원해 주는 일반 지원사업이 중심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특수목적 지원사업으로 전환되면서 갈등이 심각해졌다”며 “부패나 비리 대학 이외 대학들에 대한 일반 지원 체계에 대해 좀더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7-03-3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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