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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정파적 유혹에 쳐야 할 ‘대못’/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서울광장] 정파적 유혹에 쳐야 할 ‘대못’/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진경호 기자
진경호 기자
입력 2017-03-28 22:48
업데이트 2017-03-2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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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단언컨대 대한민국 언론의 핵심 문제는 대한민국 누구도 언론의 문제를 제대로, 올바로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판은 난무하지만 처방은 전무하다. 우선 언론 스스로 언론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언론학자들의 문제 제기는 공허하다. 정치인들은 언론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만 궁리한다. 정부는 괜히 언론 건드려 봤자 좋을 것 없다 싶어 외면한다. 저마다 ‘언론사용설명서’만 펼쳐 들 뿐 위기의 언론에 대한 구급처치법은 나 몰라라 한다.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언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나선 점은 그래서 일단 반갑다. 과거 대선에서 문 전 대표만큼 언론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후보는 기억에 없다. 지난 몇 달 동안 이어진 대세론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론을 적폐 청산의 핵심 대상으로 지목한 용기(?)는 자못 호기롭기까지 하다.

문 전 대표의 언론에 대한 문제 인식은 그러나 다분히 정파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위기 이상으로 심각하다. 심지어 관련 발언 곳곳에선 완장 냄새마저 묻어난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1일 MBC 대선 후보 토론에 나가 MBC를 질타했다. “MBC가 탄핵 반대 집회를 찬양했다”며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고 했다. 23일엔 캠프 부대변인을 통해 “MBC의 전파 사유화가 도를 넘었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엔 “이제 종편(종합편성채널)도 자리를 잡은 만큼 지상파에 대한 차별을 없앨 때가 됐다. 종편 재인가를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했다. 종편과 지상파 가릴 것 없이 모골이 송연해질 발언이다.

언론 보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다수의 언론 매체는 늘 정파적 갈등의 선봉에 섰다. 사회통합의 구심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사회 갈등을 부채질하고 소비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10년 주기로 정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많은 매체들이 두 세력의 전위대를 자임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가치를 앞세웠으나 기실 정파적 이해에 매몰된 채 편 가르기에 앞장섰다. ‘공정보도’는 편파·왜곡 보도의 실상을 가리는 덮개로 전락했다.

각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무장한 뉴미디어 시대로 들어선 지금, 상황은 더 심각하다. ‘공정보도의 위기’를 넘어 ‘사실보도의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자로’라는 정체불명의 개인(집단일지도 모른다)이 ‘세월호 충돌설’을 주장하는 동영상을 만들고, ‘음모론’에 솔깃한 네티즌들이 이를 사방팔방으로 퍼뜨리는 동안 명색이 언론이라는 매체들은 세월호가 제 몸체를 드러내는 순간까지도 이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날이 갈수록 가짜 뉴스, 거짓 뉴스가 판을 치고 있으나 언론은 이를 걸러 낼 능력도, 의지도 별반 보이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 위기의 시대다. 손에 쥔 스마트폰 하나로 시공을 넘어선 대화가 가능한 다층 구조의 소통 시대에 살고 있으나, 세대간 계층간 이념간 단절의 벽은 더 높고 공고해져 가기만 한다. 그리고 이런 분절의 시대에 언론은 점점 제 역할을 잃어 가고 있다.

언론은 지금 적폐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긴급 구조의 대상이다. 혹여 정권을 잡는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전면적으로 개보수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상황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정파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면 위기는 단순히 언론 차원을 넘어 나라와 국민 전체 차원으로 번질 것이다. 정권으로서는 뒤로 날아오는 부메랑을 기다리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40일 뒤면 대통령이 돼 있을지도 모를 유력 대선 주자의 입에서 더이상 특정 언론이 어떻고 하는 언급은 그만 나오길 바란다. 본인뿐 아니라 듣는 모두를 비루하게 만드는 언사일 뿐이다. 대못은 언론이 아니라 언론을 정파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유혹에다 쳐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정홍보처를 부활할 것이 아니라 병든 언론 환경을 수술대에 올릴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jade@seoul.co.kr
2017-03-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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