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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첫 여성수반 캐리 람은 ‘홍콩판 대처’…좌파서 친중파 변신

홍콩 첫 여성수반 캐리 람은 ‘홍콩판 대처’…좌파서 친중파 변신

입력 2017-03-26 14:29
업데이트 2017-03-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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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극복한 수재 시위엔 강경대응…홍콩 시민혁명세력과 갈등 예상

26일 선거에서 첫 여성 홍콩 행정장관으로 선출된 캐리 람(林鄭月娥·59·여) 전 정무사 사장(총리격)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정부 수반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57년 중국 저장(浙江)성 출신 홍콩 노동자 가정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람 당선인은 가난 때문에 다른 가정과 한 아파트를 나눠 살아야 했고 책상이 없어 2층 침대에서 숙제를 했지만, 중고등학생 때 항상 반에서 1등을 했으며 여학생회장도 맡았다고 한다.

그는 홍콩대 재학시절 저소득층 지원과 좌파 학생 퇴학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회 시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1980년 사회과학 학사학위를 따고 나서는 당시 영국령이던 홍콩 정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성향이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개발국장으로 선임된 직후 많은 시민의 강한 반대에도 영국 통치를 상징하는 역사적 건축물인 퀸스피어(皇后碼頭) 철거를 강행해 ‘훌륭한 싸움꾼’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2011년 뉴테리토리(新界) 지역에 횡행하던 불법적 주택건축을 단속해 시민의 호응을 얻은 그는 2012년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에 의해 정무사장으로 선임됐다.

람 당선인은 자신이 주도한 행정장관 선거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2014년 9월 말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인 도심 점거 시위(우산혁명) 때 학생 대표들과 공개 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개혁안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79일 만에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그의 이런 스타일이 중국 당국의 마음을 산 것으로 보인다.

그의 스타일은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 등으로 불리는데서도 잘 드러난다.

우산혁명 때 체포자가 1천 명에 달하는 강경 진압 작전으로 중국 당국의 신임을 얻은 람 당선인은 지난 1월 정무사장을 사퇴하면서 홍콩 행정장관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람 당선인의 출마 선언 한달 전 렁춘잉 행정장관이 예상을 깨고 연임을 전격 포기한 것도 람 당선인의 출마 발판을 마련해주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람 당선인은 중국 당국의 전격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과 달리 홍콩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30%대의 지지율을 얻어 경쟁자였던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재정장관 격)의 50%에 크게 못 미쳐, 향후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커 보인다.

람 당선인에 반대하는 홍콩 행정장관 직접 선거 요구도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하철 교통카드 이용에 서툰 모습을 보이고 인근 슈퍼마켓 대신 택시로 옛 관저에 가 화장실 휴지를 가지고 오는 등 서민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 점도 통합적 리더십을 바라는 시민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점이다.

영국 시민권을 가진 남편 람시우포(林兆波) 베이징(北京)수도사범대 교수와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한편, 작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여성 총통 취임에 이어 이번에 캐리 람의 당선으로 중화권에 여풍이 이어지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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