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길] “헌법보다 실정법, 실정법보다 정치문화가 탄핵 사태 불렀다”

입력 : 2017-03-20 22:38 ㅣ 수정 : 2017-03-2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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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끝) 전문가들의 미래 제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불러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집중한 헌법의 탓인가, 대통령을 ‘제왕’으로 떠받드는 뿌리 깊은 정치문화나 의식의 문제인가. 20일 서울신문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국내 정치학,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헌법보다는 헌법을 지키지 않는 정치문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제도적 문제점이 있다 치더라도 헌법보다는 하위 정치 제도에 원인이 있으며, 국민 참정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개헌 등 제도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신문 취재 결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치문화와 인식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개헌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20일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개헌 논의를 위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민주당을 뺀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3당 원내대표 간의 단일 개헌안 마련에 반발하면서 회의가 시작된 지 30여분 만에 파행했다. 연합뉴스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개헌 등 제도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신문 취재 결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치문화와 인식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개헌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20일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개헌 논의를 위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민주당을 뺀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3당 원내대표 간의 단일 개헌안 마련에 반발하면서 회의가 시작된 지 30여분 만에 파행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사태에는 제도적인 원인도 일부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인이라는 인물 자체, 그리고 정치문화, 의식에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제도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닌데 제도만 탓하는 게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 똑같은 대통령도 리더십이 다 차이가 나지 않았느냐”면서 “제도의 탓이 10%라면 인물이 80~90% 정도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헌법학자인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력남용 문제는 헌법의 문제라기보다는 헌법을 무시하고 안 지키는 의식이나 정치문화에서 온 것”이라면서 “현행 헌법의 기본 정신은 특정인이나 집단, 계층이 전횡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개헌 등 제도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신문 취재 결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치문화와 인식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개헌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지난 1월 5일 이주영 국회개헌특위 위원장과 원내 4당 개헌특위 간사들이 회동해 기념촬영하는 모습. 왼쪽부터 홍일표 바른정당 의원, 안상수 한국당 의원, 이 위원장, 이인영 민주당 의원,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개헌 등 제도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신문 취재 결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치문화와 인식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개헌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지난 1월 5일 이주영 국회개헌특위 위원장과 원내 4당 개헌특위 간사들이 회동해 기념촬영하는 모습. 왼쪽부터 홍일표 바른정당 의원, 안상수 한국당 의원, 이 위원장, 이인영 민주당 의원,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문제 본질은 ‘제왕적 대통령’ 국회 지배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며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권에서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제도는 ‘분권형 대통령제’다. 국회가 뽑은 국무총리와 직선제 대통령이 내치와 외치를 각각 맡아 권력을 분점하는 제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치 의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이 제도도 ‘제왕적 총리제’가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제왕적 대통령이 국회를 지배하고, 여당이 대통령을 신격화하는 데에 있는데, 이 상태로 내각제가 되면 제왕적 총리가 제왕적 대통령을 대신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면서 “권력구조만 바꾸는 개헌이 된다면 결국 권력형태의 변화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김종철 교수도 “정부 형태도 개선해야 하긴 하지만 대통령의 지위와 관련된 부분이 본질이라고 보진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원집정부제는 사실상 내각제”라면서 “국회의원들도 국민의 신뢰를 못 받고 있는데 대통령의 권력을 빼앗아서 총리한테 주라고 하는 격”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을 야기한 책임의 절반은 국회에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개헌을 하게 될 경우 그 방향은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가 아닌 국민과 나누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했다. 국회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개편에 맞춰져 있으며, 여론 수렴을 위한 생색내기용으로 기본권 문제가 얹혀 있는데, 기본권 중에서도 국민의 참정권이 확대되고 강화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사회의 문제점은 헌법과 대통령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회의 모습”이라면서 “그동안의 반인권, 반민주 정책들을 되돌리는 작업은 헌법이 아니라 국회 입법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국회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특히 여당이 국민 대표자로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기보다는 ‘청와대 여의도사무소’ 얘기를 들을 정도로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을 하려면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 요구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국회에서만 밀실에서 논의하고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만 하고 있다. 국민이 과연 동의하겠느냐”면서 “국민 입장에서는 기본권에 관심이 더 많을 텐데 대통령제만 고치면 다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김종철 교수는 국민의 정치 참여 권한을 제한하고 있는 실정법들을 문제점으로 열거했다. 그는 “지역정당 활동을 못하게 해 정당활동을 엄청나게 제한했고, 사전선거운동 금지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이 선거법 위반에 걸릴까 봐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했다”면서 “강력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로 정책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최창렬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제만 손볼 것이 아니라 그 하부조직들, 즉 국정원·검찰·경찰을 국민의 산하에 들어오게 하는 개헌이 돼야 한다”면서 “나아가 지방분권, 언론의 자유 등이 다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제도권 민주주의 시민 교육은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탄핵 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치문화나 정치의식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를 개선하는 데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럽과 미국도 민주 정치가 현 수준으로 성숙하기까지 수백년이 걸렸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 정치가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제도권에서 민주주의 시민 교육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가 민심과 단절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을 하고 복수를 하며, 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들이 서로 비판하기 바쁜데, 이런 것들을 다 치유하면서 협치를 할 강단 있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불신이 쉽게 걷히지는 않을 것이며, 소프트웨어가 바뀌지 않고 사람만 바뀌어 봐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화와 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명확한 해법은 없지만,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를 더 성숙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면서 “그동안 정경유착의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지만 앞으로는 재벌도 정치권에서 돈을 요구하면 ‘그때 얼마나 우리가 곤욕을 치렀느냐’며 난색을 표할 것”이라고 했다.

조진만 교수는 “민주시민 교육에 대해서 이젠 진정으로 고민할 때”라면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토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루아침에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주의에 돈을 투자하고 정치학자들과 정치인, 일반시민들도 다 토론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개헌보다 민주주의 교육에 더 투자해야 하고 민주주의의 교육을 기본권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2017-03-2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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