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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 아버지’ 헤스 美대령 기념비 건립

‘전쟁고아 아버지’ 헤스 美대령 기념비 건립

박홍환 기자
입력 2017-03-09 22:46
업데이트 2017-03-09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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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고아 1000명 제주로 피신…한국 공군 조종사 전투력 기여도

1950년 12월 20일, 서울은 또다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휩싸였다.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갔던 국군과 유엔군은 그해 10월 참전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서울 부근까지 밀려 내려왔다. 부모를 잃은 수많은 전쟁고아는 적의 포탄 세례에 그대로 노출될 위기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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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린 ‘전쟁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 기념비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비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김선도 광림교회 감독(원로목사),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딘 헤스 대령의 장남 래리 헤스. 서귀포 연합뉴스
9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린 ‘전쟁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 기념비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비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김선도 광림교회 감독(원로목사),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딘 헤스 대령의 장남 래리 헤스.
서귀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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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의 아버지’ 고(故) 딘 헤스(오른쪽 두번째) 미 공군 대령 연합뉴스
‘전쟁고아의 아버지’ 고(故) 딘 헤스(오른쪽 두번째) 미 공군 대령
연합뉴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고(故) 딘 헤스 미 공군 중령(대령 예편)은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과 함께 서울의 전쟁고아 1000명을 C54 수송기 15대에 나눠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켰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에 전쟁고아들의 보금자리인 보육원도 지었다. 휴전 후에도 수시로 한국을 찾아 고아들을 지원했고, 20년 넘게 전쟁고아를 위한 모금 활동을 했다. 헤스 예비역 대령에게 ‘전쟁고아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붙은 이유다.

제주도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9일 그의 공적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로써 자서전 ‘전송가’에 적었던 그의 소망도 현실이 됐다. 자서전에서 그는 전쟁고아들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우리가 구조할 수 없었던 생명들을 추모하며’라는 글귀를 새겨 주길 소망했다.

헤스 예비역 대령은 한국 공군의 토대를 만들어 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6·25전쟁 당시 미 공군이 한국 공군 조종사 양성 등을 위해 창설한 ‘바우트1’ 부대를 맡아 공군 전투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1년간 무려 250여회 출격하며 적 지상군 격퇴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F51 전투기에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우리말 글귀를 큼지막하게 적어 놓았고, 이는 한·미 공군 간 우의의 상징이 됐다.

이날 기념비 제막식에는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김방훈 제주 정무부지사,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 등이 참석했다. 그의 아들 래리 헤스(75)는 “어떤 이가 아버지에게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기억되고 싶다고 하셨다”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2017-03-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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