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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잠과 노동/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잠과 노동/박홍기 수석논설위원

박홍기 기자
입력 2017-03-06 22:22
업데이트 2017-03-0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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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정수리북미멧새라는 참새류가 있다. 가을에 알래스카에서 북멕시코로 갔다가 봄이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밟는다. 한데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이동하는 동안 무려 7일이나 잠을 안 자고 깨어 있을 수 있다. 밤이면 길을 찾아 날고, 낮이면 먹이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쉼 없이 일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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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가 한때 이 멧새에 관심을 가졌다. 잠을 안 자며 뭔가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불면의 전투 병사를 만들 목적이었다(조너선 크레리, ‘잠의 발견’). 즉 최소한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도 고도의 정신적·육체적 수행 능력을 갖춘 군인을 키울 작정이었다. 불면은 인지적·심적 결함을 초래했다. 기민성도 떨어졌다. 각성제 암페타민과 중추신경흥분제 프로비질도 엄밀히 따지면 전쟁과 관련이 깊다.

1990년대 말 러시아와 유럽은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태양광선을 지구에 반사할 인공위성을 제작해 궤도에 진입시키는 우주개발 컨소시엄을 체결한 것이다. 이른바 ‘극야’(極夜), 겨울철에 해가 뜨지 않고 밤이 지속되는 극지방 시베리아와 서부 러시아 오지에 ‘거울 위성’을 통해 달빛보다 100배가량 밝은 빛을 비추려 했다. 천연자원을 채취하는 데 24시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밤새도록 비치는 햇빛’이라는 무모한 도전에는 실패했다. 밤낮의 규칙적인 교대가 없으면, 다양한 신진대사와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잠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잠이 잠식당했다.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장시간 노동에 얽매인 까닭에서다. 나아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과 성공의 수단으로 여긴 요인도 크다. 미국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의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저서 ‘수면 혁명’에서 “충분히 자야 성공한다”고 설파했다. “하루 4~5시간씩만 자고 완벽하게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고 했다. 수면 부족이 성공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집단 환상에 빠져 살아왔다고도 했다. 잠의 복권(復權)을 선언한 것과 같다.

한국인들의 수면 시간은 적다. AIA생명이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국의 평균 수면 시간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6.3시간(평균 6.9시간)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연간 노동 시간은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246시간(평균 1766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많다. 의학계에서 권하는 적정 수면 시간은 ‘청소년 9시간, 성인 7시간 30분 정도’다. 하지만 “잠이 보약”이라는 말과는 다른 현실에 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잠의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삶의 활력을 찾기 위해서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7-03-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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