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잃은 장소, 그 삶의 의미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에식스 카운티의 바다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 등의 각본가로도 유명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를 연출한 신작에 바로 이 지명을 제목으로 붙였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금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장소(place)와 공간(space)의 차이다. 그곳에서 느끼는 감각의 유무가 두 가지를 가르는 기준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과 어쩌다 잠깐 들르게 된 생소한 지역이 같은 의미를 가질 수는 없으니까.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장소가 감각을 일깨우고 기억을 환기한다면 공간은 그런 것과는 무관하다. 가령 지금은 보스턴에 사는 리(케이시 애플렉)에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공간이 아니라 장소일 수밖에 없다. 그는 그곳에서 나고 자랐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았으며, 형 조(카일 챈들러)의 가족과 이웃해 지냈다. 그런데 어떤 까닭에서인지 현재 리는 외따로 떨어져 있다. 반지하방에 혼자 살면서 건물 잡역부로 무표정하게 일하는 그는 어쩐지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술집에서 눈이 마주친 남자에게 괜한 시비를 걸어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뭔지 모를 울분이 리에게 가득 쌓여 있다. 그는 아마 울분의 원인이 된 그 사건으로 인해 고향을 떠났으리라.

리가 몇 년 만에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은 조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형은 아들 패트릭(루커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그를 지정하고 세상을 떠났다. 리는 당황스럽다. 조가 살아 있을 때 그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 들은 바가 없었다. 갑자기 고등학생 조카의 양육을 떠맡게 된 리. 그는 패트릭을 데리고 보스턴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자기 삶의 모든 기반이 이곳에 있는 조카는 삼촌의 생각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런 대치-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장소에서 떠나려는 사람과 남으려는 사람의 갈등을 다룬다.

조의 죽음에 패트릭의 잘못은 없다. 애도 과정을 충실히 거치면서 그는 이곳에 계속 살아도 될 것이다. 반면 리에게 이곳은 자꾸 예전의 추억과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날은 그의 현실로 느닷없이 밀어닥친다(실제로 감독이 특히 신경쓴 부분이 과거가 현재로 소환되는 장면의 교차편집이다). 리는 고향을 견디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의 실수로 아이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동네 사람들은 리의 불행을 이해하는 척하며 뒤에서 수군댄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겪었다는 사실은 같다. 그렇지만 이처럼 죄책감의 여부에 따라 삼촌과 조카의 이후 선택은 달라진다. 다시 그들은 본인의 자리에서 각자의 장소성을 만들어 갈 것이다. 삶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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