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직전 주말 택배배송 따라가보니
“폭설이 내려서 택배물품 수거 트럭이 늦나 봅니다. 오늘도 빵하고 우유로 점심을 때워야겠어요.”한 택배기사(오른쪽)가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눈 쌓인 인도에서 배송차량에 상자를 전달한 뒤 또 다른 곳에 택배를 하기 위해 서둘러 행낭을 둘러메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새벽부터 내리던 폭설은 오전 들어 그쳤지만 차도와 인도 모두 반쯤 녹은 눈 때문에 질퍽거리고 미끄러웠다. “요즘같이 설을 앞둔 대목이면 새벽 5시 전에 경기 고양시의 물류센터로 출근해야 합니다. 제가 맡은 점포에 전달할 물건을 싣고 서울 강남으로 넘어온 뒤 이 물건을 전달하면서 점포에서 본사나 다른 점포에 보낼 물건들을 수거하죠. 하루에 두 번, 트럭에 수거한 물건을 싣고 나면 통상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김씨의 구역은 강남지역 백화점 3곳, 압구정·청담·신사·삼성동 일대 업체 및 매장 70곳 정도다. 주로 의류,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데 하루 평균 30㎏ 박스 60개, 10~15㎏ 행낭 80개 이상 운반한다고 했다. “원래 제가 낚시광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힘든 일을 반복하면서 고단함 때문에 낚시를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폭설로 인한 도로 사정으로 12시쯤에 수거 트럭이 도착했고 김씨는 물품을 재빨리 트럭에 옮겨 실은 뒤 자신의 트럭을 몰고 신사동 가로수길로 향했다. 매장에서 기다릴 것이라며 점심을 미룬 그는 가로수길에 도착하자 3분에 한 번꼴로 차에서 내렸다. 물품이 담긴 큰 박스가 담긴 행낭을 매장 직원에게 건네주고 15㎏ 정도 나가는 다른 행낭을 받아왔다. “하루에도 수백 번 차를 내렸다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짐을 져서 내리다 보면 어깨, 허리, 무릎이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어깨 인대가 늘어난 게 수십 번이고, 허리 디스크도 생겼습니다. 설에는 일이 몇 배로 많아지죠. 하지만 이번 설에는 불황 탓인지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때문인지 평소보다 일이 60% 정도만 늘어서 걱정입니다. 내가 힘들어도 매장 직원 얼굴이 밝아야 힘도 나는데, 요즘은 제 마음도 씁쓸합니다.”
매일 매장을 순회하니 직원과 친분도 쌓였다. 한 매장 직원은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늘 반갑게 인사를 해주어서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며 “서로 서비스업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기 때문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폭설이 오는 날이면 언덕을 오르내리는 데 온 신경이 곤두선다고 했다. “내가 다치면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니까요. 매일 의류와 액세서리를 옮기다 보니 좋은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됐지만 아내에게 사주고 싶어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내죠. 그래도 언젠가 좋은 옷 하나 선물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17-01-21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