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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빨강 자전거/박건승 논설위원

[길섶에서] 빨강 자전거/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6-12-21 22:38
업데이트 2016-12-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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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빨강 자전거가 거실 한쪽을 차지한 것은 한 달 전쯤부터다. 직장에 다니는 딸 아이에게 퇴근 시간을 맞추려 카톡을 한 게 발단이었다. ‘아빠, 오빠가 조금씩만 보태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테니 엄마 생일 선물로 새 자전거를 해 드리자’는 제안에 낚인 것이다. ‘가성비 높게’ 생색낼 수 있으니 망설일 턱이 없지 않은가. 대신 빨간색으로 하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내의 옛 자전거 색도 빨강이다. 딸아이가 열한 살 때 우리 집에 왔으니 14년 동안 아내의 직장·집안일을 도와 발 노릇을 한 셈이다. 주변 개구쟁이들이 두 번씩이나 가져갔던 것을 동네 구석구석 뒤져 다시 데려온 녀석이다. 그새 정도 많이 들었다.

아내는 여전히 옛 빨간색 자전거를 탄다. 새것이 보기도 아깝다는 뜻일 게다. 옛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퇴근길에 현관문 밖에 서 있는 옛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늘 그래 왔듯이 어젯밤에도 찬바람과 맞섰을 것이다. 왠지 애잔해서, 녀석에게 속내를 넌지시 내비쳐 보지만 돌아오는 말이 있을 리 없다. 말 못 하는 이름이다. 말로써 피곤한 세상, 말로 속고 속이는 세상…. 말을 못해도, 관심을 못 받아도 늘 그 자리에 있는 녀석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2016-12-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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