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찬란한 황금 유물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황금 보물인 아프가니스탄 황금유물전에는 틸랴테페에서 발굴된 금관을 비롯해 유물 20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 유물들을 온전히 꺼내서 우리 품으로 가져온 고고학자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틸랴테페를 발굴한 러시아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1929~2013)는 평생을 중앙아시아의 모랫바람을 견디며 실크로드의 유적을 발굴한 고고학자였다. 그는 틸랴테페에서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유적을 발굴하다 우연히 황금의 무덤을 발굴하는 행운을 맛보았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겨울을 지내 본 사람들이라면 그 차디찬 모랫바람을 견디며 수천 점의 금 부스러기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게다가 황금 유물은 대부분 얇게 금박을 입히거나 자잘한 알갱이를 붙인 것들이어서 붓질을 조금만 세게 해도 바스러지기 십상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황금 부스러기 하나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발굴해 냈고 일일이 복원했다. 더욱이 사리아니디는 자기가 발견한 황금 유물 자료를 전 세계에 알리고 어떠한 조건도 없이 그 유물을 모두 아프가니스탄에 주고 왔다. 이집트의 미라나 트로이의 황금 유물 같은 위대한 발굴품이 서양으로 반출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탈레반 시절에 유물이 사라지자 서방의 사람들은 사리아니디가 훔쳐 갔다며 억울한 누명을 씌웠건만 그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그리고 2003년에 카불의 지하 창고에서 틸랴테페의 유물이 다시 발견되자 사리아니디는 70대 중반의 노구를 이끌고 직접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유물을 감정하고 자신의 모든 자료와 사진들을 조건 없이 아프가니스탄 관계자들에게 모두 주고 떠나갔다. 그는 생전에 언론에서 틸랴테페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하면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고고학자라도 한 점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한국에서도 40년 전 신안 앞바다의 침몰선이 발견됐을 적에 국내에서는 제대로 잠수를 해서 유물을 발굴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 급히 파견된 해군 해난구조대의 잠수 장교들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파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수중 발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지만 오로지 유물에 대한 열정으로 수천 번을 잠수한 그들 덕에 신안의 유물들은 우리의 품에 돌아왔다.
사실 돌아보면 고고학뿐이겠는가. 유물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고고학자들의 노력처럼 우리 사회도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매주 토요일 수백만 개의 촛불이 모여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광경을 보면 마치 땅속에 묻혀 있던 수많은 토기 조각들이 복원돼 하나의 거대한 역사를 보여 주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촛불 시위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연설과 촌철살인의 문구들을 보면서 진정한 역사의 원동력은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흔히 과거에는 소수의 왕과 귀족들이 노예를 거느리며 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200만년 인간의 역사에서 그런 시절은 기껏해야 5000년도 안 된다. 인류의 역사는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유기적으로 모여서 지혜를 모았기에 가능했다. 유물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역사를 이루듯이 거대한 국민의 함성이 진정한 역사를 만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016-12-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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