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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의 아침] 대인춘풍, 지기추상/류찬희 경제정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대인춘풍, 지기추상/류찬희 경제정책부 선임기자

류찬희 기자
입력 2016-12-07 18:36
업데이트 2016-12-0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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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찬희 경제정책부 선임기자
류찬희 경제정책부 선임기자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 공무원들 집무실에 흔히 걸려 있는 액자 속 글귀다. 다른 사람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감싸고, 자신은 가을 찬서리처럼 매섭고 엄하게 지키라는 뜻이다. 주변 관리가 더욱 요구되는 사람들, 고위 공직자들이 좌우명으로 삼는 글이다. 이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기준이기도 하다.

나라가 시끄럽다. 국정은 공백 상태다. 국민들은 허탈감과 분노에 차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주변을 잘 관리하고 자신에게는 매서운 잣대를 들이댔다면 국정이 이 정도로 농락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을 실망에 빠뜨리고 국가 기강이 무너진 것은 이들이 ‘지기추상’을 잊은 탓이다. 정도를 넘고 분수를 벗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는 봄바람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스스로 너그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국정 혼란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주변의 고위 공직자나 측근들 또한 이 사태를 키운 조력자다. 대통령은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정상적인 의사 결정을 거쳐 냉철하게 정책을 펼쳐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정책을 농단한 주변 인물을 봄바람으로 감쌌다.

비서실장은 대통령 주변의 작은 일도 챙기고 국정도 챙겨야 하는 자리다. ‘순권력’으로 치면 장관급이지만 사실상 국정을 조율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총권력’에서는 장관과 비교할 수 없다. 권력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참모 자리지만 현실은 다르다. 가까이는 청와대 참모(비서관)의 업무를 총괄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다. 비서관의 흐린 판단으로 국정이 농락당했다면 곧 비서실장의 잘못이다. 비서들의 잘못으로 국정 혼란을 이 지경까지 방치한 것은 직무유기다. 그런데도 “나는 몰랐다”는 식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뒷받침하고 부처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다. 특히 참모 정치를 좋아하는 현직 대통령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책을 조율하면서 직언도 가능한 자리가 수석비서관이다. 그런데 문제가 된 수석비서관의 대답은 국민들을 충분히 분노하게 한다.

자신의 판단은 없고 모두 대통령이 시켜서 했다는 식이다.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설령 대통령이 밀어붙여 어쩔 수 없이 잘못으로 빠져들었다고 하더라도, 직언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했으므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해야 하는 자리다.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이 시키는 일만 하는 자리인가. 그런 소신이 없다면 스스로 그만뒀어야 할 일이다.

반구저기(反求諸己), 반구저인(反求諸人)이라는 말도 있다. 군자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뜻으로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원인과 책임을 자기 자신의 행동에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다. 반면 소인은 일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사람을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에 앉혔냐는 말이 나오겠는가. 대인춘풍 지기추상. 차기 대권주자,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글귀가 아닌가 싶다.

chani@seoul.co.kr
2016-12-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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