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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소네트 77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소네트 77

입력 2016-10-05 18:00
업데이트 2016-10-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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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 77

-윌리엄 셰익스피어

거울은 그대의 아름다움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고,

해시계는 그대의 소중한 시간이 어떻게 낭비되는지를 보여 주고;

종이의 여백은 그대 마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니,

이 책에서, 그대는 이러한 교훈을 얻으리라.

그대의 거울이 낱낱이 보여 줄 그대의 주름살들은

그대에게 입을 벌린 무덤을 기억하게 할 것이며;

그대 해시계의 남몰래 살금살금 돌아가는 그림자는

영원을 향한 시간의 도둑 같은 전진을 알게 하리라.

그대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빈 종이에 적어 두면, 그대는 발견하리니

그대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들이

그대의 마음을 새롭게 알게 만든다는 것을.

이러한 일들은, 그대가 자주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대에게 이로우며 그대의 책을 아주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Thy glass will show thee how thy beauties wear,

Thy dial how thy precious minutes waste;

The vacant leaves thy mind‘s imprint will bear,

And of this book, this learning mayst thou taste.

The wrinkles which thy glass will truly show

Of mouthed graves will give thee memory;

Thou by thy dial’s shady stealth mayst know

Time‘s thievish progress to eternity.

Look what thy memory cannot contain,

Commit to these waste blanks, and thou shalt find

Those children nursed, delivered from thy brain,

To take a new acquaintance of thy mind.

These offices, so oft as thou wilt look,

Shall profit thee and much enrich thy 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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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셰익스피어(1564~1616)의 소네트 중에서 드물게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글쓰기를 장려하는 교훈이 담긴 시다. 셰익스피어는 모두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는데, 시간의 덧없음과 사랑 그리고 (연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시인이 연모하던 미남 청년에게 바쳐진 소네트가 126편이고 ‘dark lady’로 알려진 검은 피부의 젊은 여자를 노래한 시가 28편이다.

1609년에 런던에서 처음 출판된 뒤로 판을 거듭하며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지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오늘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즐겨 셰익스피어를 인용한다. 셰익스피어 사후 400주년이었던 2016년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풍성했다.

얼마 전에 (9월 초였다) BBC 방송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좋아하는 중국의 여성작가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금지되었던 셰익스피어는 보수적인 중국대륙의 동성애 예술가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다른 이름이었다. 소네트 15의 인상적인 한 줄, “And all in war with Time for love of you, (그리고 너를 사랑하며 모든 것이 시간과 전쟁 중이니,)”를 외우는 그녀를 보며,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새롭게 읽히는 걸작의 힘을 확인했다.

작은 노래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sonetto’에서 유래한 소네트(Sonnet)는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14줄의 정형시를 말한다. 약간의 예외는 있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99는 14줄이 아니라 15줄로 구성되었다. 소네트의 운율은 시대에 따라, 시인에 따라 변화했는데 셰익스피어가 소네트의 각운을 매기는 방식은 ‘abab cdcd efef gg’이다. 소네트 77은 처음 4행의 각운을 ‘wear-bear’ ‘waste-taste’로 맞추기 위해 세 번째와 네 번째 행의 문장을 도치시켰다. 그냥 읽어서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으면 앞뒤의 단어들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게다가 고어가 섞여 단어장을 찾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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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형 기자
이완형 기자
1행에 처음 나오는 ‘thy’는 2인칭 대명사의 소유격(=your)이다.

3행의 ‘The vacant leaves’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필사본 책의 낱장들을 의미한다. 앞뒤 2페이지가 1 ‘leaf’이다.

4행의 ‘thou’는 2인칭 대명사의 주격(=you)이고 ‘mayst’는 동사 ‘may’의 직설법 2인칭 단수형이다. ‘mayst thou=may you ’이다.

6행의 ‘thee’는 2인칭 대명사의 목적격(=you)이다.

11행의 ‘아이들’은 머리에서 태어나 자란 ‘문학적 자식들’을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시간의 효과를 들려주며 머리에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하라고 가르치는 소네트 77의 내용으로 짐작컨대, 시인이 사랑했던 남자는 그의 후배 작가가 아닐까. 거울에 비치는 주름은 죽음이 다가온 징조라니. 과장이 심하지 않나! 시간을 도둑에 비유해, 해시계 둘레를 (주인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살금살금 돌아가는 그림자를 ‘시간의 도둑 같은 전진’으로 표현한 것도 참 맛깔스럽다.

망각에 대비해 글로 기록하라는 시인의 충고를 영국은 외면하지 않았다. 서양문명은 기록의 역사였다. 기록하는 자가 이긴다. 컴퓨터가 발명된 이후 인류의 중요한 기록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담당해 왔다.

손톱만 한 usb에 나의 모든 쓸모 있는 생각들이 저장되어 있다. 어디를 가든 스마트폰으로 분분초초 뇌리를 스치는 생각과 느낌의 덩어리를 이메일로 문자메시지로 카톡으로 올리는 요즘, 기록의 욕망이 지나쳐 때로 성가신 SNS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나, 잉크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신의 소네트를 손끝으로 순식간에 전파시키는 나를 보고 셰익스피어가 뭐라고 말할지….
2016-10-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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