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열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당시 수행하던 임상연구는 새로 개발된 ‘무채혈 혈당 측정기’ 시제품의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하기 위해 시행됐다. 혈액을 이용하지 않고도 혈당 측정이 가능한 기기가 개발되고 있으며 실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지도교수의 얘기를 들었을 때 필자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당뇨병 환자가 스스로 혈당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바로 혈당을 측정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큰 위험은 없다고 하지만 혈당을 확인하기 위해 환자들은 일부러 자신의 손끝에 상처를 내고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환자들은 불편해하거나 무서워하고 때로는 심한 거부감으로 측정을 거부하곤 한다. 임상연구의 실무를 맡아 보라는 지도교수의 지시를 받고 필자는 당뇨병 치료에 새로운 혁신이 도래할 것으로 믿었고, 이 임상연구가 그런 혁신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며 연구를 수행하게 됐다.
예산과 수행기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환자를 모집해 연구를 수행하지는 못했다. 참여에 동의한 환자 20여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기존에 사용하는 통상적인 혈당 검사 장비와의 정확성을 비교했다. 결과는 썩 나쁘지 않게 나왔다. 대부분의 측정값이 기존 혈당 측정장비와 상관관계가 높았고, 오차 역시 임상적으로 큰 문제 없이 받아들여지는 수준으로 확인됐다. 다만, 필자는 해당 장비가 기존 제품을 실제로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충분한 확신을 얻지 못한 채 연구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역시 예상대로 해당 장비는 시장 진입에 실패해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필자가 평가한 장비는 출혈 없이 개인의 혈당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값이 실제 혈액에서 측정된 값과 100% 일치하지는 않았다. 특히 식사 후 당뇨병 환자의 혈당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해당 장비를 이용해 측정된 혈당의 변화는 30분가량 지연 측정되었다. 이렇게 지연 측정된 혈당은 저혈당을 경험하는 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임상적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됐다. 또 미세한 전류가 느껴져 예민한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줬다. 심지어 일정 시간마다 기존 혈당 측정기를 이용해 혈당을 측정하고, 그 값을 입력해 오차를 보정해야 했다. 결국 썩 나쁜 장치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자가 혈당 측정기가 가진 단점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번거로움을 키우는 장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 강산이 변하긴 하는 모양이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드디어 사용성이 상당히 개선된 연속 혈당 측정 장비가 여러 회사에서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 현재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한 회사가 새로 출시한 연속 혈당 측정장비를 테스트 목적으로 착용하고 있다. 조금 더 사용해 봐야 알겠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개선된 성능을 경험하고 있다.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몇 개 더 있어 보이지만 바야흐로 당뇨병 환자들의 자가 관리에 혁명적 변화가 시작되는 특이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부디 필자의 경험을 초월하는 멋진 제품들이 출시돼 많은 환자들의 건강에 기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2016-09-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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