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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G20 회의로 본 중국 외교와 의전/민귀식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열린세상] G20 회의로 본 중국 외교와 의전/민귀식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입력 2016-09-07 18:04
업데이트 2016-09-0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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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귀식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민귀식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야제는 베이징올림픽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했다. 중국은 또 다양한 액션플랜이 포함된 ‘항저우 컨센서스’를 도출해 의제 설정 주도권도 행사했다. 그리고 브릭스(BRICS) 5개국 정상회의에서 중재자 역할을 발휘하고 개발도상국도 초청해 새로운 지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대한 ‘의전 홀대’에 관심이 더 집중되면서 중국이 공들인 잔치가 빛을 잃은 형국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중국이 공항에 레드카펫을 깔지 않아 논란이 분분해진 것이다. 비록 실수였다고 해도 불편한 심정이 의도하지 않게 노출돼 의전을 중시하는 중국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외교는 의전’이다. 특히 강대국 간의 의전은 국익뿐만 아니라 국가 권위와도 연관돼 있다. 그래서 중국은 실무 정상외교보다는 지도자의 권위가 유지되는 국빈 외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역대 미·중 정상회담에서 의전은 특별했고 중국은 이를 잘 활용했다.

1972년 베트남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자 닉슨이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그런데 닉슨은 ‘공군 1호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중국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이동하는 수모를 당했다.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지 못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중국이 미수교국 국적기는 영내를 비행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전략적 견결성, 전술적 유연성’이라는 공산당의 협상 방침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당시 중국은 미국보다 소련의 위협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지만, 짐짓 닉슨이 소련을 먼저 방문해도 좋다는 여유를 보이면서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허허실실 전략을 구사했다. 대단한 배짱이자 미국의 초조함을 최대한 활용한 심리전이었다. 한편 중국은 저우언라이가 직접 방탄차를 타고 점검할 정도로 닉슨 영접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그러나 ‘예를 갖추지만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다’(以禮相待 不亢不卑)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이렇게 해서 중국은 냉전이 끝나지 않는 시기에도 논리적 명분과 당당한 협상 자세로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그 결과 ‘상하이 코뮈니케’에 합의하고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반대로 1998년 클린턴의 방중 때는 실리를 위해 의전을 최대한 활용했다. 중국은 미국이 매년 인권문제와 최혜국 대우를 연계하는 간섭에서 벗어나 영구적인 혜택을 받길 원했고, 이를 위해 클린턴의 방중 때 최고의 의전을 준비했다. 클린턴에게 시안(西安) 성벽 위를 오르는 당나라 황제 행차를 재현하는 의전을 베풀어 그의 만족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리고 장쩌민과 클린턴은 ‘건설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데 합의해 역대 가장 긴밀한 양국 관계를 구축했다. 이는 ‘사람은 만족할 때 많은 대가를 지불한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실천한 실리외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닉슨의 방문 때는 녹록잖은 형세에 당당한 기세로 대응하면서도 시와 철학을 논하는 품격으로 상대를 매료시켰다. 여기에는 보통 때보다 세 배나 많은 의장대를 도열시키고, 닉슨 취임식에서 연주된 그의 애창곡 ‘아름다운 아메리카’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섬세한 의전이 있었다. 클린턴과의 협상에서는 허영심을 자극해 실리를 챙겼지만, 전통 문화와 황제의 권위를 활용한 멋과 운치 있는 의전이 있었다. 모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물론 미·중 갈등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의전이기도 했다.

중국은 대미 외교에서 의전을 중시한다. 그러니 이번 의전 홀대 논쟁이 중국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그것이 바로 외교다. 난사군도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 판결과 미국의 공격적인 동맹 강화 및 사드 배치 등 중국의 수세적인 초조함이 드러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중국은 핵심이익 수호라는 원칙을 다시 천명했지만, 세심한 부분에서 유연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연성 부족이 협상의 원칙까지 빛을 잃게 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협상은 품격 있는 전투’이고 품격은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와 인내력은 중국이 자랑하는 강점이었다.
2016-09-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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