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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간여행] 돌담이 사라진 자리

[이호준 시간여행] 돌담이 사라진 자리

입력 2016-08-30 18:00
업데이트 2016-08-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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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낯선’ 여성과 함께 서 있다. 시쳇말로 ‘뻘쭘한’ 순간이다. 어색함을 모면해 보겠다고 함부로 눈길을 던지거나 말이라도 걸었다가는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시선을 45도 각도에 고정시키고 얼른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문이 열리자마자 서둘러 내린다. 어? 웬일이지? 그녀도 따라 내린다. 아차!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야 눈치를 챈다. 앞집에 사는 사람이었구나. 내 안면 인식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심했다. 이웃하고 산 지 벌써 몇 년인데….

담이 사라지고 집과 집 사이의 경계를 벽이 대신한 뒤부터 생긴 일이다. 틈 하나 없는 벽이 이웃 간의 소통과 관계를 완전히 차단했다. 아파트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단독주택 역시 높다란 벽을 올려 밀폐된 공간을 확보했다. 도시든 시골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웃은 없고 나와 내 가족만 존재할 뿐이다. 심하면 가족 사이에도 벽을 쌓는다.

돌담이 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때의 담은 경계(警戒)가 아닌 최소한의 경계(境界)였다. 배척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다. ‘고향’ 하면 낮게 흐르는 돌담부터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영랑(永郞)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라도 암송하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둥실 떠올라 고향으로 내달았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돌담만이 이렇게 조금 간지럽고 행복하고 어지럽기까지 한 시구를 품을 수 있었다.

오래전 생긴 마을들은 앞자락에 내 하나씩 끼고 있었다. 거기서 건져 올린 호박돌이 담을 쌓는 재료였다. 물론 그런 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초가집들은 낮은 담으로 네 집 내 집을 구분했다. 한 집의 담을 따라가면 또 다른 집 담이 이어져 어깨를 겯고 살았다. 돌담은 솟을대문 우뚝한 대갓집 담처럼 위압적이지 않았다. 아낙네들은 아침이면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안부를 확인하고, 쑥버무리라도 찐 날이면 “순자야!” “철수야!” 불러서 주고받았다.

겨울 한낮,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약속이 없어도 돌담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햇살은 돌담을 사랑했다. 부드러운 손길로 돌 하나하나를 어루만졌다. 겨울바람도 돌담 앞에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감췄다. 사내아이들은 그 앞에서 딱지도 치고 구슬치기도 했다. 몰래 훔쳐 온 담배도 한 모금씩 빨아 보고 닭서리를 모의하기도 했다.

노인들에게도 양지바른 돌담은 만남의 장소이자 놀이터였다. 담 앞에 앉아 곰방대를 입에 물면 푸른 연기가 잃어버린 꿈들을 하나씩 그려 줬다. “내가 소싯적에는 말이야….” 노인들의 이야기는 만주 벌판을 달리기도 하고 종로 뒷골목의 주먹패가 되기도 했다. 가끔은 막걸리 내기 윷놀이 한판을 벌여 놓고 동네가 떠내려가라 흥을 돋웠다.

돌담이 시멘트 벽돌담으로 바뀌어 가던 무렵 농촌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요즘은 시골에 가도 돌담 보기가 쉽지 않다. 돌담이 흐르던 자리마다 단단한 벽들이 들어서 있다. 이웃 간에 나누던 정도 전설만큼이나 멀어졌다. 더이상 돌담을 쌓지 않는 지금 영랑의 햇발은 어느 곳에 기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을까.

이웃끼리 마주쳐도 긴가민가하다가 인사조차 못 나누고 헤어지는 게 어찌 나뿐이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의 추억마저 없었다면 참으로 팍팍한 세상을 살다 떠날 뻔했다.
2016-08-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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