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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모든 정직한 사람은 예언자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모든 정직한 사람은 예언자

입력 2016-08-17 22:54
업데이트 2016-08-18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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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인간을 파괴시키려거든 예술을 파괴시켜라. 가장 졸작에 최고 값을 주고, 뛰어난 것을 천하게 하라.”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문장을 되새기며 팥빙수를 먹었다. 매일 시를 끄적이던 서른 살 즈음에 블레이크를 읽으며 나는 부지런히 밑줄을 그었다. 글을 써서 먹고살기를 희망하던 나는, 예술에 대한 블레이크의 번뜩이는 통찰에 공감하며 아웃사이더인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십 년 넘게 글쟁이로 살며 문단이 어떤 동네인지 알게 된 지금, 영국시인의 이백 년 묵은 풍자는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달콤 시원한 팥빙수가 나를 위로하리. 무더운 여름날, 신촌의 카페에서 빙수를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식힌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 방으로 돌아와 블레이크의 시집을 다시 읽었다. 중년이 된 나는 ‘런던’(London)처럼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겨냥한 시들보다 조용하지만 울림이 큰 ‘순수의 예감’(Auguries of Innocence)에 더 끌린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네 손바닥 안에서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 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고…

주인집의 문 앞에서 굶어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겪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알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가리…

열정 속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열정이 그대 속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여기저기 거리에서 들려오는 창부의 울음소리는

늙은 영국의 수의(壽衣)를 짤 것이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A Robin Red breast in a Cage

Puts all Heaven in a Rage…

A dog starvd at his Masters Gate

Predicts the ruin of the State…

Man was made for Joy &Woe

And when this we rightly know

Thro the World we safely go…

To be in a Passion you Good may Do

But no Good if a Passion is in you…

The Harlots cry from Street to Street

Shall weave Old Englands winding Sheet…

*

‘순수의 예감’은 블레이크가 사망한 뒤에 육필공책에서 찾아낸 132행의 긴 작품이다. 순수를 타락한 상태와 대비시킨 역설, 산업혁명기 영국사회에 만연한 사악함을 고발하는 슬프며 아름다운 비유들이 빛난다. “돈은 가장 큰 악마”라며 산업사회의 자본숭배를 비판했던 시인이 블레이크인데, 스티브 잡스가 ‘순수의 예감’을 좋아했다니 그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1757년에 런던의 소상공인의 아들로 태어난 블레이크는 집에서 말하고 쓰기를 배웠다. 4살 때 그의 창문에 머리를 내미는 하느님을 보았다는 블레이크는 자신의 환상을 그리려 화가가 되기를 원했고, 그의 부모는 이 예사롭지 않은 아이를 드로잉 학교에 보냈다. 14세에 어느 판화가의 공방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다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독립해 친구와 인쇄소를 차리고 삽화 작업에 몰두했는데, 당시 유행하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배격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해 가난에 시달렸다. 그는 이성보다 상상력을 중시했고, 자연의 모방보다는 내적인 비전을 추구한 낭만주의자였다.

사실 나는 블레이크의 그림보다는 시를 높이 평가하고, 시보다는 산문을 더 좋아한다.

“모든 정직한 사람은 다 예언자이다. 그는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적인 일에서나 자기의견을 서슴없이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시원 통쾌하게 살다 간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매장되기 쉽다. 유럽을 휩쓴 시민혁명과 급진사상의 영향을 받아 예술에서도 정의를 요구하며 시류와 타협하지 않았던 블레이크의 말년은 불우했다. 그가 사랑하던 동생이 병으로 죽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전이 실패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젊은 미술가들을 사귀며 다시 세상과 소통한다. 작업에 흥미를 잃은 블레이크는 그를 찬미하던 젊은 미술가의 도움으로 다시 창작에 몰두해, ‘단테의 신곡’을 그리다 죽음을 맞았다.

19세기 영국화단과 문단의 이단자였던 블레이크는 죽은 뒤에 화려하게 부활해 그의 전집과 전기가 잇달아 출판되었다. 그의 인간을 파괴시키지도 그의 예술을 파괴시키지도 않은, 영국인들이 부럽다.
2016-08-1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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