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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유통’되는 맹독성 니코틴 원액

‘묻지마 유통’되는 맹독성 니코틴 원액

명희진 기자
명희진 기자
입력 2016-06-27 18:10
업데이트 2016-06-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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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용 원액 해외 직구 밀매… 시중서도 신분 확인 없이 구매

액상 제조법 ‘김장’ 온라인 퍼져… 세금 회피·자살 등 범죄 악용

한 온라인 사이트의 니코틴 원액 판매 화면(위). 중국의 한 업체에서는 한국말로도 니코틴 원액 구매 상담을 한다(아래).
한 온라인 사이트의 니코틴 원액 판매 화면(위). 중국의 한 업체에서는 한국말로도 니코틴 원액 구매 상담을 한다(아래).
 “세금만 내면 (니코틴 원액 구매하는 데) 아무 문제없습니다. 10㎖ 제품이 10.99달러예요.”
 27일 중국에 있는 직접구매 사이트에 접속해 니코틴 원액을 구입할 수 있는지 묻자 판매원이 바로 가격을 말해 준다. 니코틴 원액은 향료와 10대1로 섞어 전자담배에 넣어 사용한다. 문제는 이 원액 자체는 성인 기준 35~65㎎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라는 점이다.
 구입 과정은 너무나 간단했다. 우리나라 고객이 얼마나 많은지 24시간 한국말 상담도 가능했다. “100㎖ 제품은 59.99달러(약 8만원), 10㎖ 제품은 10.99달러(약 1만 3000원)인데 20㎖ 이상이 되면 세금 폭탄 맞아요. 1㎖당 세금이 1500원씩 붙으니까 10~20㎖ 제품(9000~1만 8000원)을 사는 게 좋아요. 배송비는 별로도 13달러이고 배송 기간은 2일에서 5일 정도 걸립니다.”
 니코틴 원액을 살 수 있는 건 온라인사이트뿐만이 아니다. 담배를 대체하는 전자담배의 원료가 된다는 이유로, 현존하는 독극물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하다고 알려진 니코틴 원액이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니코틴 원액은 시중 가게에서도 판다. 니코틴 원액과 향료를 섞어서 달라고 하자 가게 주인은 “집에서 조심히 ‘김장’해 쓰면 된다”며 귀찮아했다. ‘김장’은 니코틴 원액과 향료를 직접 혼합해 전자담배용 원료를 만드는 것을 뜻하는 은어다. 직접 전자담배 원료를 만들면 비용은 시중가의 10% 선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니코틴 원액은 마치 염산처럼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힌다. 전자담배 원료를 만들다가 니코틴 원액이 피부나 안구에 튀어 병원을 찾는 피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20대 여성이 충북 청주에서 니코틴 희석액을 마시고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한 법의관은 “최근 외상이 없는 시체를 부검하다 보면 니코틴이 검출되는 경우가 눈에 띈다”며 심각성을 경고했다. 포털사이트에서도 ‘니코틴으로 자살할 수 있느냐’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니코틴 원액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부분 해외 직접구매를 통해 반입되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다. 또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구입한 니코틴의 경우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자담배 업체를 운영하는 신모씨는 “국내에 유통되는 니코틴 원액 중에는 전자담배용이 아니라 살충제용도 꽤 있다”면서 “통상 저렴한 비용 때문에 해외 온라인사이트에서 구입하지만 개인이 니코틴을 관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국내 판매업체도 관리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염산, 황산 등 맹독성 화학물질을 구입할 때는 구매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날짜 등을 기재하고 신분증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온·오프라인 업체 모두 신분증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아 명의를 도용해 구매할 수 있다. 얼마든지 이 독극물을 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니코틴 원액은 전자담배용으로 쓰인다는 이유로 화학물질관리법에서 사고대비물질(급성 독성·폭발성이 강한 물질)이 아닌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된다. 사고대비물질의 경우 실험 연구 용도가 아닌 개인적인 목적으로 판매할 경우 온라인 중개업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되지만 유해화학물질은 판매자 허가만 있으면 제재가 따로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기획재정부와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확실한 단속 규정이 없음을 인정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6-06-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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