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19세기에 한국·중국 역사서를 번역한 러시아/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19세기에 한국·중국 역사서를 번역한 러시아/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16-05-24 18:14
수정 2016-05-2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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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대표되는 조선의 연행사가 베이징을 오고 가던 때에 러시아도 정교회의 신부들을 베이징으로 파견해 본격적으로 동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절단들이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데 정신이 없을 때 러시아 신부들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번역에 몰두했다. 대표적으로 얀키프 비추린(1777~1853)은 중국 정사 25사에 기록된 한국과 동아시아의 역사를 번역했으며, 한국 사신과 교유하며 한국어를 배우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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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그의 번역은 1900년대 러시아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기본 교재가 됐다. 비추린은 그 밖에도 당시의 공용어인 만주어를 비롯해 티베트어, 몽골어 자료도 번역해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물론 러시아 동양사 연구의 기초를 확립했다. 비추린 이후 베이징사절단 신부들은 만주어로 쓰인 요나라의 역사인 ‘요사’와 금나라의 역사 ‘금사’를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만주어판 ‘요사’와 ‘금사’는 누르하치를 이어 청의 황제가 된 숭덕제가 이민족인 몽골족의 손으로 왜곡된 만주족들의 역사를 제대로 밝히고자 다시 쓴 것이다. 러시아 신부들이 한문으로도 있는 두 사서를 굳이 만주어에서 러시아어로 번역한 이유는 이 책들이 단순한 역사를 넘어 청나라의 자존심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동방에 진출한 배경에 총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설가 한강과 함께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원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문학도였다. 그는 한국의 소설에 대한 번역가가 없다는 점을 알고 지난 7년간 한국어 번역에 집중했다고 한다. 영국에 다양한 언어를 번역하고 소개하는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 언어에 대한 사이트 에트놀로그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어는 사용 인구로 볼 때 세계 12위에 해당한다. 자국의 번역 문화가 발달하기에 충분한 규모다. 게다가 날로 커지는 한국의 국제적인 수준을 고려하면 다양한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접근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수준 높은 번역시장의 발달은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열강들이 총칼을 앞세운 제국주의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이해했다면, 21세기에는 수준 높은 번역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번역은 바로 각국 문화의 역량을 보여 주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번역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낮다. 영어로 귀결되는 한국의 단순한 국제화 인식에 원인이 있다. 영어는 나라 간의 소통을 위한 필수 요소이지만,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궁극적으로 해당 국가의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영어 몰입교육과 유학의 결과 영어만 알면 국제화가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됐다. 예컨대 중앙아시아와 중국 신장 지역 등 실크로드 일대에 대한 연구는 지난 100여 년간 대부분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쓰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출판된 수십 종의 실크로드에 책들은 현지의 사정과 차이가 있는 영어와 일본어를 번역한 것이다. 우리의 주 관심 지역도 이러한데 상대적으로 전문가가 없는 중동이나 아프리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요즘이니 일상 대화를 번역하고 통역하는 번역기가 조만간 상용화될 것이다. 이제 나라의 국가적 역량은 일상 대화가 아니라 외국어보다도 타국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번역 인프라로 발현될 것이다. 수준 높은 번역은 궁극적으로 모국어 구사 능력과 타 문화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뒷받침되는 사회적 배경하에서 가능하다. 스미스가 모국어인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소설가 한강의 수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외국어 교육은 영어 회화 위주이고, 모국어인 한국어의 말하기와 쓰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다. 게다가 인문학이 극도로 위축돼 다양한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급감하고 국제화의 척도는 영어로만 획일화하면서 오히려 문화적 고립에 처할 우려마저 있다. 우리의 소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기쁜 만큼이나 한국의 소설을 발굴, 번역할 수 있는 문화 강대국들의 번역 인프라가 부럽다. 번역의 수준이 바로 한 국가의 문화를 보여 주는 척도라면 한국은 여전히 나아갈 길이 멀다.
2016-05-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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