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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역사로 쌓은 모두의 성지

수천년 역사로 쌓은 모두의 성지

박기석 기자
박기석 기자
입력 2016-04-08 17:48
업데이트 2016-04-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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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수도 ‘성벽의 도시 예루살렘’을 가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성벽의 도시다. 베이지색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도시 전체 면적의 0.8%에 불과하다. 하지만 구·신시가지를 막론하고 건물과 도로는 모두 성벽의 색을 따르고 있어 어디에 서 있든 성벽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다. 예루살렘을 수놓은 베이지색 벽돌은 햇빛을 머금으면 화려함을 뽐내고, 비가 도시를 적실 때는 본연의 청초함을 내보인다. 성벽은 변함 없이 그 자리를 지켜 왔지만 성벽의 돌은 매 순간 변화한다. 성벽 너머에는 그 유명한 황금색 돔의 이슬람 사원과 함께 유대교의 메노라(일곱 갈래의 촛대 문양), 기독교의 십자가로 장식된 여러 종교 건물이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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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욥바)문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서쪽 성벽. 16세기에 재건된 서쪽 성벽은 구·신시가지를 나누는 기준이며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분할 점령하던 1967년 이전에 양국의 국경이기도 했다. 현재 서쪽 성벽 밖에는 고급 빌라와 쇼핑몰이 들어서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자파(욥바)문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서쪽 성벽. 16세기에 재건된 서쪽 성벽은 구·신시가지를 나누는 기준이며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분할 점령하던 1967년 이전에 양국의 국경이기도 했다. 현재 서쪽 성벽 밖에는 고급 빌라와 쇼핑몰이 들어서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슬람·유대·기독교 문화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은 성벽을 중심으로 안은 구시가지, 밖은 신시가지로 나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인이 활동했던 지역은 모두 구시가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은 성벽 밖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기원전 10세기경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이후 예루살렘의 주인은 수차례 바뀌었고 그 때마다 구시가지와 성벽은 파괴되고 또 건설되기를 반복했다. 오늘날의 구시가지와 성벽은 16세기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쉴레이만 1세에 의해 재건돼 이어져 오고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전체 길이 4㎞인 성벽 위로 올라가 한 바퀴 돌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치를 비교할 수 있다. 구시가지와 바로 마주한 시온산이나 올리브산에 올라 산등성이를 따라 흘러가는 성벽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좀 더 멀리 나가 히브리대 캠퍼스가 있는 스코퍼스산의 전망대에 가면 예루살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걷기가 아닌 세그웨이를 택했다. 바퀴가 두 개 달려 있는 킥보드 모양의 스쿠터인 세그웨이는 운전자가 발판 위에 올라선 뒤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면 저절로 움직인다. 예루살렘의 세그웨이 투어 업체를 이용하면 초심자라도 간단한 훈련 과정을 거쳐 성벽 외곽을 둘러보는 단체 투어에 따라나설 수 있다. 세그웨이 투어는 걷기보다 품을 덜 들이며 예루살렘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약간의 스릴과 속도감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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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에서 토라를 읽고 기도를 드리는 유대인들. 통곡의 벽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국인이더라도 유대교 전통 모자인 ‘카파’를 써야 한다.
통곡의 벽에서 토라를 읽고 기도를 드리는 유대인들. 통곡의 벽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국인이더라도 유대교 전통 모자인 ‘카파’를 써야 한다.
●軍 경계선이었던 성벽… 빈부 경제 장벽으로

세그웨이 투어 가이드는 우리를 ‘예민 모세의 풍차’ 밑 전망대로 이끌었다. 1860년쯤 근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영국 출신 유대인 모세 몬테 피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풍차 주변에는 이제 부유한 유대인들이 모여들어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예루살렘 서쪽 성벽을 마주 보고 있는 이 전망대에 서면 성벽과 힌놈 계곡이 위아래로 평행을 이루며 좌우로 펼쳐진다. 푸른 힌놈 계곡과 옅은 흙빛의 성벽은 대조를 이루며 오른쪽으로 달려 나가다가 어느새 성벽은 끊어지고 계곡은 너른 사막과 만난다. 가이드는 저 사막 너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관할이라고 알려 줬다.

풍차 밑 전망대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서쪽 성벽은 평화로웠지만 불과 50여년 전만 하더라도 총탄이 빗발치는 국경이었다. 1967년 이전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 점령하고 있었던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서쪽 성벽을 두고 대치했고 요르단군의 총격으로 성 밖 인근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웠다. 하지만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좁고 낡은 구시가지 대신 서쪽 성벽 밖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고급 빌라와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쇼핑 거리인 마밀라몰이 들어섰다. 이스라엘과 중동을 정치·군사적으로 단절시켰던 예루살렘 성벽은 이제 부유한 유대인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아랍인을 나누는 경제적 장벽이 됐다.

이제 성벽 안으로 들어갈 차례. 예루살렘 성벽에는 총 8개의 문이 있다. 그중 동쪽 성벽에 있는 황금문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구시가지는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듯 약 1㎢도 안 되는 면적이 종교에 따라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네 쿼터로 나뉘어 있다.

세그웨이 투어가 끝난 뒤 자파(욥바)문을 통해 구시가지에 입성했다. 구시가지에서 일말의 망설임을 느꼈다면 그것은 평균 높이 12m의 성벽이 주는 물리적 압박감에 더해 테러 가능성에 대한 심리적 불안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동예루살렘 등지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유혈 충돌이 격해지면서 외신들은 1987년, 2000년에 이은 제3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가 시작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구시가지 유대·아랍인 공존… 관광객도 ‘북적’

하지만 구시가지 길을 걸으며 이런 불안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시선은 부드러웠다. 여행을 도와준 유대인 가이드는 “좁은 구시가지에 사는 유대인과 아랍인 대다수는 작은 소란이 곧바로 파멸로 이어지며 따라서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뿌리에서 나왔으나 수천 년 동안 불신하고 불화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복잡한 관계에 비해 구시가지에서 쿼터 간 이동은 시시할 정도로 쉬웠다. 성벽과 닮은 베이지색 벽돌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쿼터를 넘나들며 전혀 다른 문화를 마주하게 된다. 자파문을 지나 기독교 쿼터 거리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가 그려진 기념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 순간 푸른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르메니아 스타일의 도자기가 가판에 등장한다.

기독교 쿼터와 이슬람 쿼터의 경계에는 구시가지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인 성분묘교회와 비아 돌로로사가 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뒤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간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와 예수가 사망하고 부활한 성분묘교회는 기독교도의 성지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슬람 양식의 건물과 아랍인 상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종업원의 호객행위에 못 이겨 상점에 들어가면 갖가지 향신료와 중동 음식을 접할 수 있다.

유대교 쿼터와 유대교도의 성지인 통곡의 벽은 성분묘교회에서 동쪽으로 이슬람 쿼터를 가로질러야 나온다. 여행 당일은 유대교의 안식일인 사바스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모든 생계 활동을 멈추고 신을 기린다. 모든 상점과 관공서는 금요일 일몰 전에 문을 닫고 유대인들은 일몰 무렵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교 경전인 토라를 읽거나 함께 찬송한다.

●유대교 안식일 軍 경비 강화 긴장감 맴돌아

해가 지기 시작하자 유대교 전통 복장인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납작한 원반 모양의 모자 카파를 쓴 유대인들이 속속 이슬람 쿼터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구시가지를 지키던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도 경비를 강화했다.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랍인 청소년들을 붙잡아 그자리에서 몸수색을 했고, 일부는 본부로 연행했다. 주위에 있던 아랍인들은 애써 모르는 척했으며, 유대인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나 자유롭게 오갔던 거리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통곡의 벽에 이르기 전에 보안검색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검색요원은 가방을 일일이 열어 보고 수상한 물건의 정체를 물었다. 보안검색대를 지나면 통곡의 벽이다. 이미 수많은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조명 아래서 앞뒤로 몸을 흔들며 토라를 낭송하거나 서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며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장관이다. 통곡의 벽 건너에는 솔로몬왕이 지었다는 성전의 터가 있다. 지금은 이슬람교의 황금사원이 황금색 돔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들어서 있다. 황금색 돔은 유대인들에게 아픈 역사를 상기시킨다. 세계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의 상징으로 주저없이 황금색 돔을 꼽지만 유대교 쿼터에서 파는 예루살렘 기념품에는 황금색 돔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통곡의 벽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시온산을 오르면 유대인들의 외침은 점점 잦아들고 통곡의 벽과 황금사원이 한눈에 보인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경제수도 텔아비브와 달리 밤에 활동하는 인구가 적기에 도시의 불빛도 여타 대도시에 비해 약하다. 하지만 주변 불빛이 은은할수록 황금색 돔과 통곡의 벽은 더욱 빛나 예루살렘의 야경에 특별함을 더한다.

글 사진 예루살렘(이스라엘)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여행수첩

→한국이 7시간(서머 타임 적용 시 6시간) 빠르다. 기후는 우기(겨울 12~2월)와 건기(여름 4~10월)로 나뉜다. 예루살렘이 텔아비브보다 평균 3도 정도 낮다. 여름에도 일교차가 있으므로 여러 종류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의 검문검색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공항 요원이 출입국시 직업, 이스라엘 방문 목적, 동반인, 이스라엘 숙소 등을 철저히 묻는다. 따라서 항공기 출발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출입국 시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 대신 종이로 된 카드를 나눠 준다. 아랍 국가 방문 시 빚어질 수 있는 여러 불편을 줄이기 위해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배려다.
2016-04-0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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