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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3>해장국 마이너리티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3>해장국 마이너리티

김경운 기자
입력 2016-01-11 16:00
업데이트 2016-01-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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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을 각자의 5대 영역으로 분할한 메이저급 해장국 외에도 우리에겐 몸에 좋고 맛있는 마이너급 해장국도 많다. 실력이 없어서 약자가 아니다. 조금 앞서는 강자가 더 대중적 기득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양에 비해 훨씬 다양한 우리 해장 음식이 식객들을 즐겁게 한다.

 동해의 해안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7번 국도를 가다가 삼척 근처에 이르면 곰치국 집 20여 곳에서 쓰린 속을 달려며 해돋이를 맞을 수 있다. 곰치 해장국 덕분이다. 싱싱한 곰치에 묵은지를 송송 썰어 넣고 푹 끓이면 시원하고 약간 달달한 맛이 온몸에 퍼지면서 몸이 풀린다. 곰치의 단백한 식감과 시큼한 김치의 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곰치는 못난 얼굴과 큰 이빨에 몸은 흐물흐물하고 점성이 많아 어부들도 먹기를 꺼렸다고 하지만 매력을 지녔다. 해장에 좋은 단백질과 비타민, 아미노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낮은 지방과 칼로리 덕분에 다이어트에도 좋다. 옛 문헌은 ‘맛이 순하고 술병에 좋다’는 기록을 남겼다. 김치는 소화 흡수력을 돕는다. 곰치는 멀리 깊은 바다에 살지만 겨울철에는 산란을 위해 낮은 연근해에 모습을 드러낸다.

 동해의 곰치와 쌍둥이처럼 닮은 게 물메기다. 입 모양 등이 조금 다르지만 맛이나 그 효능은 비슷하다. 서해에선 곰치 국이나 탕처럼 물메기를 그대로 끓여 먹지 않고 해풍에 꾸둑꾸둑하게 말려 양념을 곁들여서 먹는다.

 그러나 곰치 해장국의 인기는 전국으로 확산되지 못한 채 강원 영동에 머물렀다. 대관령을 넘어 평창 등 영서 지방에는 황태 해장국이라는 메이저급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곰치의 설움인 셈이다.

우리는 복어 회나 그 요리가 일본이 원산지인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예부터 중국은 물론 우리 선조들도 꽤나 즐겼다. 중국에선 복어를 하돈(강의 돼지)이라고 추켜세웠고, 북송 때 시인 소동파는 복어의 맛을 ‘죽음과도 맞바꿀 맛’이라며 칭송했다. 조선의 선비들도 복어 회 한 접시를 비운 뒤 뜨끈한 복국으로 게운한 맛을 즐기는 걸 풍류로 여겼다. 서양에서도 복어를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와 떡갈나무 숲에서 자라는 버섯인 ‘트러플’, 거위 간 요리인 ‘푸아그라’와 함께 4대 진미로 꼽기도 한다.

 요즘은 바다의 까치복이나 참복 등으로 해장국을 끓이지만, 중국에서나 선조들은 복어 중 유일하게 강에 서식하는 황복을 으뜸으로 여겼다. 뱃살에 황금색 띠를 두른 황복은 함경남도 마식령산맥에서 서남쪽을 가로질러 경기 파주에 이르는 임진강에 주로 산다. 초봄에 산란을 위해 험난한 여정을 견디며 한강 하구에 이르기 때문에 육질이 쫀쫀하고 탱탱하다. 청산가리의 10배가 넘는 맹독을 지녀 ‘죽음의 맛’이라는 표현이 괜한 말은 아니다. 복어 해장국에는 미나리와 콩나물, 소금 등만 있으면 그만이다.

 보양식이자 해장 음식인 민어탕도 빼놓을 수 없다. 조기와 친척뻘인 민어는 제주 근해에서 겨울을 나고 기온이 풀리면 멀리 발해만까지 북상한다. 조기와 이동 경로가 비슷한데, 민어는 북상의 길목인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조기잡이가 성행하고 나면 이후에 잘 생긴 모습을 드러낸다. 또 남해와 동해에선 대구 뽈탕이 겨울철 해장을 도와준다. 큼지막한 대구의 대가리를 푹 고아서 파와 풋고추, 부추, 토란대 등을 넣고 다시 끓인다. 시원한 육수 맛과 대가리에 붙은 볼살을 뜯어먹는 식감이 좋다. 한때 사라졌던 대구가 최근 우리 바다에 돌아왔다. 대구나 아귀, 명태 등은 생것보다 해풍에 말린 뒤 탕으로 끓여 먹는 게 훨씬 낫다.

제주에서는 갖가지 해산물에 된장을 풀어 끓인 해물뚝배기가 바다의 내음으로 속을 풀어준다. 닭새우, 소라, 오분자기, 조개, 표고버섯 등이 들어간다. 오분자기는 마치 전복의 새끼처럼 생긴 난대성 어패류인데, 최근 난류의 영향으로 남해안까지 서식지 분포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오분자기는 해감을 잘 시킨 뒤 살짝 익혀야 한다.

 또 제주에선 한치 물회, 자리돔 물회 등이 별미 속풀이 음식으로 통한다. 한치는 오징어보다 식감이 부드럽다. 경북 포항에서는 가자미, 도다리, 꽁치 등으로 물회를 만든다. 홍합에도 숙취 해소에 좋은 타우린 성분이 많다. 이쯤 되면 마이너급 해장국도 결코 약자가 아니지 않을까.

 

 <황복> 시인 이학영

 

 내심 자신을 달굴

 독한 결심 하나 깨워

 밀어보라...

 금빛 출렁이는

 황복(黃福)의 꿈 반드시

 이루어 봄이 어떠한가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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